"뇌종양 후유증으로 장애를 겪고 있지만 환자 돌보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환자를 한사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저는 이 일을 해야합니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3동 '건강백세 내과·방사선과' 원장 김명곤(42·진단방사선과 전문의)씨. 뇌종양으로 3차례 수술과 오랜 투병 생활을 해왔던 그는 4년여만인 지난달부터 진료실에서 환자를 맞고 있다.
그의 몸은 온전치 못하다.
수술에 따른 후유증으로 왼쪽 손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말조차 어눌하다.
이런 그가 어떻게 환자를 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그러나 사고, 판단, 인지 능력은 정상이고, 불편한 몸은 방사선과 진료를 하는데 큰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역경을 이기며 살아왔다.
14세 때 무너지는 담벼락에 깔리면서 중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오랜 병원생활을 해야 하는 바람에 엄청난 병원비를 대느라 집안 살림이 거덜 났고 이 때문에 그는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어린 나이에 철공소 보조일을 하면서 집안의 생계를 도와야 했다.
막노동도 마다않고 일을 해야하는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그는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경야독 끝에 고입 및 대입검정시험을 통과하고 경북대 의과대에 입학, 목표했던 의사의 길을 걷게 됐던 것.
헬렌 켈러에게 훌륭한 가정교사 셜리번이 있었듯이, 그에겐 빈틈없는 '조수'인 아내가 있어 진료에 어려움이 없다.
아내 유영주(40)씨는 진단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등 그의 손·발이 되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개원 준비를 하면서 한 달 동안 대학병원 방사선과에서 의학공부를 했다고 한다.
환자라면 누구나 진료실에서 '장애인 의사'를 만났을 때 불안감을 느꼈을 법하다.
그러나 불안감은 그의 꼼꼼함과 열의로 인해 이내 묻혀 버린다.
뇌종양을 이기고 다시 일어난 그는 충북 음성의 복지시설 '꽃동네'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며 지낼까 생각했지만 오랜 고심끝에 사회에 남아 정상인과 다름없이 일하는 것이 더 뜻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시 일어선 김씨는 이제 어떤 시련도 두렵지 않다며 "오늘 하루 건강히 지냈고, 아픈 사람을 돌볼 수 있다는데 감사할 뿐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교영기자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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