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큰장 서문시장에 대를 이어 신용을 축적하며 불황을 극복해나가는 젊은 상인들이 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취업이 어려워진 탓도 있지만 이보다는 시장 상인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에 다니다 그만두고 시장에서 미래를 개척해나가며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웃대의 단골손님들이 아직도 계속 발걸음을 하고 있어 이 가게들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래시장에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서문시장 6개 상가 가운데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동산상가의 경우 690개 가게 중 42개가 2대 혹은 3대째 장사를 하고 있다.
상가 전체 상인의 약 6%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구체적으로 지하 1층 그릇 및 나전칠기 도·소매상 72곳 중 6곳, 1층 아동복·잡화점 165곳 중 10곳, 2층 의류잡화점 222곳 중 15곳, 3층 의류점 222곳 중 11곳이 대물림으로 '큰장'의 상도를 지키며 노하우를 축적해나가고 있다.
신세대의 패션감각으로 상가 세대교체, 현대화를 주도해나가고 있는 대물림 가게들의 영업현장을 살펴본다.
◇모자(母子) 대물림 수예품 가게=1999년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박종호(31)씨는 취업보다 시장을 선택했다.
40여년간 장사를 해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재 어머니와 함께 1층 가게에서 방석, 이불보, 카펫 등을 판매하고 있다.
박씨는 매년 1월 5박 6일 일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 섬유관련 전시회에서 최근 유행하는 패션 경향을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감각을 바탕으로 국내서 디자인을 직접 선택해서 외국 바이어에게 주문을 내 천을 수입하고 있다.
봉제과정은 국내 업체에 맡기게 되는데 이렇게 할 경우 완제품을 수입할 때보다 원가를 훨씬 줄일 수 있게 된다.
또한 제품이 독특해 대구·경북지역은 물론 서울, 제주 등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는 편이다.
◇부녀(父女) 대물림 아동복 가게=서문시장에서 33년간 장사를 해온 윤종식(58)씨는 IMF 외환위기 이전부터 자녀들에게 가게를 물려주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광고기획을 전공해서 충분히 취직이 가능했던 큰딸에게 3평정도의 아동용 모자 등 소품가게를 맡겼다.
직장생활보다 벌이가 낫다고 생각한 큰딸도 생활이 자유롭고 마음이 편하다며 시장가게를 선택했다.
윤씨는 현재 8평 크기의 유아·아동복 가게를 둘째딸에게 물려줘 모녀가 함께 장사를 하고 있다.
자녀들의 패션감각이 좋아 젊은 주부 손님들이 늘고 있다고 말하는 윤씨는 셋째딸에게도 액세서리 가게를 마련해줬으며 넷째딸도 현재 언니들에게 장사 노하우를 배우며 실습을 하고 있다.
◇부자(父子) 대물림 부인복 가게="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돈을 모으려면 작은 돈부터 아껴야죠". 50년대 중반부터 장사를 해온 부친의 가게를 이어받아 동산상가 2층에서 부인복을 판매하고 있는 박재홍씨는 알뜰정신부터 배웠다고 한다.
70년대 초반엔 옷이 몸에 잘 맞지 않아도 잘 팔릴 정도로 손님들이 많아 장사에 재미를 본 뒤, 85년부터 원단을 구입해서 봉제를 한 뒤 판매하기도 했다.
재래시장 옷이지만 품질이나 디자인 면에서 대형판매점의 물건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박씨는 요즘도 백화점이나 동대문시장을 직접 방문, 유행스타일이나 색상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자(父子) 3대 대물림 그릇 가게=1950년대 장사를 시작한 웃어른의 가게를 물려받아 동산상가 지하에서 그릇류와 각종 주방기구, 나전칠기제품을 판매하는 배운천씨는 요즘도 부친의 단골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온다고 말한다.
부친이 쌓아놓은 신용이 불황의 파고를 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품질이 좋고 값이 저렴한 주방용품을 찾는 예비 신혼부부들의 발길도 잦은 편이다.
안동, 구미, 포항 등 경북지역뿐만 아니라 울산, 마산, 창원 등 경남지역의 소매상들도 많이 찾고 있다.
부친으로부터 배운 봉사정신을 아들에게도 물려줄 생각인 배씨는 요즘도 알이 5개인 주판으로 고객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부자(父子) 대물림 캐주얼복 가게="인테리어 혁신으로 미시족을 잡아라". 2년 3개월의 직장생활을 접고 서문시장에 뿌리를 내린 최광덕씨는 1960년대말부터 장사를 해온 부친의 가게를 물려받았다.
지금도 손님을 대할때면 '항상 친절하고 바르게 살아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패션의 최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1주일에 한번정도 백화점이나 동대문상가를 방문하고 있다.
최씨는 "3층에 있어도 세련된 인테리어나 코디로 미시족 고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자랑.
30, 40대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서문시장 동산상가의 고객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동산상가에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난 것은 패션감각을 갖춘 젊은 가게 주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백화점이나 할인점 못잖은 시설을 갖추기 위해 상인 모두가 변화를 거듭해온 덕택이다.
옥상에 주차장을 설치하고, 고객휴게실, 어린이놀이방, 정수기 등을 마련, 쾌적한 쇼핑공간을 가꿔 나가고 있다.
김근석 동산상가번영회장은 "상가내 계단을 9월까지 대리석으로 교체하고 지하휴게실도 새로 단장해 고객이 편안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병곤기자 min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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