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기다려도 찾아오는 손님 한 명 없는 한적한 시골학교. 신작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교정으로 들어선다.
운동장에 나와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이동과학차'가 도착한 것이다.
전교생 100명도 안되는 작은 학교에 모처럼 구경거리가 생긴 셈이다.
시골 동네에 서커스단이 찾아온 들 이만큼 기쁠까?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개구쟁이들은 서로 먼저 실험도구를 나르겠다며 아우성이다.
오늘은 구구단을 외우지 않아도 되고, 숙제검사도 없다.
하루 종일 신기한 과학도구를 만지며 직접 실험도 해보고, 로봇도 움직여보고, 모형 로켓도 쏘아올릴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모델 로켓공작. 플라스틱과 종이로 된 공작세트를 조립해 만든 30cm 크기의 로켓에 화약을 장착, 발사하면 공중으로 100~200m 날아간 뒤 낙하산을 펴서 떨어진다.
'슈웅'하는 소리를 내며 로켓이 땅을 박차고 오르면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와아'하는 탄성을 지른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6시간 넘게 과학수업이 진행되지만 마치는 시간이면 항상 아이들이 아쉬워 합니다.
과학기자재가 학교마다 많이 보급돼 있지만 아직 소규모 학교에선 다양한 실험·실습을 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림으로만 접하던 실험을 직접하는 아이들로선 신기할 수 밖에요". 올해로 4년째 이동과학차 수업을 하는 경북도 과학교육원 손철원(54) 연구사는 보람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동과학차'는 경북도 과학교육원이 지난 1988년 전국에서 최초로 시작한 것. 전교생 100명 이하 소규모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과학 흥미 유발과 탐구능력·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실시하고 있다.
매년 80개 학교를 찾아가 5천여명의 과학 꿈나무에게 평소 접하기 힘든 과학 실험·실습을 보여주는 이동과학차는 현재 전국에서 확대 시행 중이다.
개조한 45인승 버스 2대에 시골 미니학교에서 갖추기 힘든 다양한 과학·실험기자재를 싣고, 연구사 4명이 초교를 방문해 종일 수업으로 다양한 과학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학교마다 학생수는 평균 50~70명, 많아야 120명 남짓이다.
이동과학차는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역별로 3, 4개 학교를 묶어 3박4일 일정으로 지역을 순회한다.
올해도 8일부터 11월 27일까지 빡빡한 일정이 잡혀있다.
"한두시간 수업한 뒤 쉬는 것도 아니고, 종일 학생들을 지도하고 나면 피곤이 젖어듭니다.
게다가 시골로 출장 나가면 3, 4일 집에도 못가고 여관방 신세를 지죠. 하지만 피곤함도 잠시 뿐입니다.
이튿날 다른 학교를 찾아가 교문을 들어설 때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면 새 힘이 솟습니다". 박창규(50) 연구원을 비롯한 이동과학차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웃음과 환호 덕분에 일을 한다고 말했다.
이동과학차가 연간 방문하는 학교수는 대략 70여개로 평균 5천여명이 수강한다.
이동과학차가 가지 못하는 유일한 곳은 울릉도. 행여 기상악화로 울릉도에 간 이동과학차가 돌아오지 못하면 다음 일정에 차질을 빚기 때문.
올해도 흥미진진한 과학실험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종이와 나무 세트로 만드는 항공기 모형도 인기과목 중 하나. 틀과 동체, 날개를 연결해 만든 후 날리면 모형항공기는 양력을 타고 하늘로 솟구친다.
상승기류를 만날 경우 하루종일 땅에 내려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학생들에게 특히 인기있는 실험 프로그램은 산호나라와 잎맥표본 만들기. 산호나라는 용액이 든 병에 염화철·염화니켈·염화구리를 넣으면 삼투압작용으로 염화물질이 물을 흡수, 작은 덩어리가 산호처럼 커지면서 예쁜 소품이 된다.
잎맥표본만들기는 나뭇잎 중에서 맥만 남기고 이파리를 모두 없앤 뒤 예쁘게 염색하고 코팅을 하면 예쁜 자기만의 책갈피가 된다.
이밖에 전자 초인종 제작, 성냥미사일, 소시지 전기구이, 도미노 만들기, 토네이도 실험, 요술판자 제작 등도 어린이들이 관심을 갖는 프로그램들. 학교나 학생이 부담하는 비용은 전혀 없다.
실험도구와 재료 모두 이동과학차에 실려오고, 학생들은 각자 만든 것을 가져갈 수 있다.
연간 실험예산 2천만원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딱딱한 과학을 흥미진진한 과학으로 바꾸기엔 충분하다.
"이동과학차가 오는 날은 단순히 과학실험하는 날이 아닙니다.
시골 학생들에겐 신나는 하루의 축제인 셈이죠. 자신들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 작품이 실제로 작동하는 걸 보면서 자신감도 함께 커갑니다". 신호철 연구사는 이동과학차를 타고 떠날 때면 자신도 아이들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포항·박진홍기자 pj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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