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만드는 학교-어린이신문 단체구독

초등학교에서의 잘못된 어린이신문 구독 행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신문활용교육(NIE)이 나름대로 상당한 교육 효과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어린이신문은 비교육적 영향이 더 큰 것으로 교사들은 평가하고 있다.

신문의 내용은 물론 잘못된 구독신청·배달 형태는 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간다는 비난까지 사고 있다.

▲엉망인 내용을 획일적으로 활용=참교육 학부모회, 전교조 등이 소년○○신문 이름으로 학교에 배달되는 3개 어린이신문을 모니터한 결과는 학부모들의 기대와는 대조적이다.

기자라고는 두세명인데다 내용의 다양성, 어린이의 시각 반영, 현장성 등이 전혀 없다는 것. 더구나 며칠 전에 보도됐던 내용이 기사화되기 일쑤이고 그마저 모(母) 신문사의 취재경향이나 논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아직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 일방적인 가치관 주입 위험마저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게임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기사 하단에 게임의 폭력성을 그대로 선전하는 광고가 따라붙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는 것.

보통의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지면 가운데 광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50% 안팎인데다 그마저 불필요한 소비를 충동질하는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도 문제. 연예인 사진이나 영화 할인권 등 월 구독선물을 내세워 학생들의 구독률을 높이는 방식도 보통 신문과 다를 바가 없다.

어려서부터 신문 구독의 폐해를 고스란히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이신문은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활용되는 최고의 교재가 되고 있다.

교사들이 NIE라는 명목으로 문제풀이를 하거나 한자·영어 쓰기를 강요하는 모습은 흔한 일. 수업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온 학생들이 각자의 취미나 적성에 맞는 활동을 하고 교사가 이를 도와주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왜곡된 구독 행태=현재 지역에서는 주로 3개의 어린이신문이 학교에 배달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선택권은 사실상 봉쇄돼 있다.

학교측은 관리 편의를 내세우고 신문사 지국들은 신청 부수가 적으면 배달할 수 없다고 버티는 통에 한 학교에 한 종류의 신문만 배달되는 게 대부분이다.

학교 배달도 지국이 아니라 학생들이 맡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지국은 신문 뭉치만 던져둘 뿐 배포는 학생들 몫이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학년 담당 어린이들은 현관 앞에서 신문 뭉치를 나눠 각 학급으로 옮겨야 하고, 학급의 담당 어린이는 구독 어린이에게 배달해주는 형태가 보통인 것.

신문대금 수납도 학교가 대행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학교통장을 이용해 신문값을 입금하는 스쿨뱅킹이 가장 많고 학부모들이 거두거나 행정실, 심하면 교사가 직접 수납하는 학교도 적지 않다.

영리업체인 신문사가 해야 할 구독신청에서부터 배달, 대금 수납까지 모든 역할을 교육기관인 학교가 대신해주는 셈이다.

▲이유는 기부금=학교측이 이처럼 신문사 업무를 대행하는 건 교육 효과를 높이 보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학교는 신문사로부터 대가성 기부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일인당 월 구독료 3천500원 가운데 500~900원이 기부금으로 학교에 전달되고 있으며 일부는 교장이나 교사들에게 직접 전해지기도 한다는 것.

때문에 학교측이 구독을 권하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거나 교사가 직접적으로 권유하는 현상도 쉽게 나타난다.

기부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학부모들에게 좋게 비칠 리가 없다.

한 학부모는 "어린이신문이 효과가 없는 줄 알고 구독신청을 안 했더니 담임교사가 설마 3천500원이 없어서 그러냐며 삐딱하게 굴고 이후로는 매일 벌을 세우는 등 아이까지 핍박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교육청이 나서야=지난해 4월 대구·경북 200여명을 비롯한 전교조 교사 800여명과 전국 교육대 학생들은 어린이신문 단체 구독 거부운동을 선언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난 지금도 초등학교에서의 어린이신문 구독 행태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교사들은 "학교가 영리업체의 업무를 대행하고 기부금을 받는 것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교사의 명예를 스스로 짓밟게 만드는 부끄러운 행위"라고 하지만 관행은 되풀이되고 있다.

일부 교장, 교감들은 교무회의는 물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훈화에서까지 어린이신문 구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교육청의 적극적인 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교육당국은 어린이신문 구독을 강요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고 하지만 사례는 찾기 힘들다.

물렁한 감독 속에 어린이신문 구독의 잘못된 관행은 수십년째 그대로이고, 신문에 대한 어린이들의 부정적인 인식만 깊어지고 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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