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성진칼럼-격을 높이기 위한 노력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가진 국회 국정연설에서 원고에도 없던 KBS사장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국정연설의 '격'을 떨어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금년도 국정의 기본방향, 특히 당면현안인 이라크 파병문제를 비롯한 한미관계 등에 대한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입장을 민의의 대변기관인 국회에서 밝히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는 것이 국정연설의 기본 취지일터인데, 특정 공영기구의 인사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경위 설명을, 그것도 변명같이 늘어놓은 것은 객관적으로 보아 국정연설의 관행적 권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함의(含意)일 것이다.

언론에 보도가 되든 않든, 사실 '격'의 문제는 이 정부에 들어와 과거 어느 때보다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장관의 격, 특정 권력기관의 격뿐만 아니라 말의 격, 사람의 격도 심심치 않게 화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격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이것을 은연 중 지키고, 또 높이기를 바라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잠시 생각해 보게 된다.

원래 격이란 법식이나 자리 또는 인품을 뜻하는 말이다.

지위에 걸맞은 수준 또는 자품(資品)을 의미하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 공직자나 기관의 격을 말할 때는 법이나 제도, 관행에 의하여 그 자리나 기구에 기대할 수 있는 권위랄까 위상을 의미할 것이고, 연설이나 말의 격을 논의할 때는 그 연설이나 말을 하는 사람의 지위나 성격에 비추어 상응한 수준의 내용과 품격을 갖추었나를 따져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격이란 형식적 권위와는 분명 다르며 '격이 있다'거나 '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때에는 대체로 기대되는 수준과 높이를 갖추었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라고 보여진다.

이 정부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특히 격의 문제를 민감하게 느끼고 또 자주 거론하는 것은 인사에 있어서의 관행파괴와, 노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솔직하고 탈권위적임을 자랑하는 일부개혁인사들의 행태와 어법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나름대로의 기준과 철학에 바탕한 인사문제와 관련하여 격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또 권위주의의 담을 허물고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으로 국정에 임하려는 공직자의 담백한 모습을 구시대적인 격식의 창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니까 특정장관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출근한다거나 (지금은 달라졌다고 보지만), 장관이 과장 방을 직접 찾아가 업무를 협의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모습을 격에 어긋난다고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다.

문제는 국민의 수임기관인 공직자는 그 공적 임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법과 제도에 따라 일정한 권위를 부여받고 있는데, 그 권위에 걸맞은 말과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국민을 상대로 영속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공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있다.

대통령이 특정 공영기구의 노조대표를 청와대에서 만나 직접 담판을 시도한다거나, 그 인사보좌역이 1급 공무원들은 그만큼 했으면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보도를 보면서, 과연 그러한 행동이나 말이 그 자리의 격에 맞는 언행이었는지를 되씹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권위주의와 존중해야 할 권위 그 자체는 분명 다르다.

법과 제도에 따른 공직의 참된 권위는 지켜져야 하고 그러기위해서는 공직자의 말과 행동도 일정한 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리에 걸맞은 수준이나 자품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공직자는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로 국민의 기대와 실망, 보람과 상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부단히 이를 아끼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참된 격은 절제와 인내, 수련에서 나오는 정신적인 것이다.

새 정부는 집권초기의 획득감과 의욕과잉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격, 사람의 격, 나라의 격을 높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차분하면서도 꾸준하게 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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