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국과 유럽 왜 사사건건 부딪히나

'보안관 미국과 술집 주인 유럽'.

소련이라는 존재에 맞서 '우방'이라는 틀안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왔던 미국과 유럽이 냉전체제 종식과 함께 미묘한 갈등을 빚고 있다.

그리고 갈등은 최근 이라크전을 계기로 두 진영의 서로 갈길이 다름을 재인식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연구원으로 있는 로버트 케이건이 펴낸 '미국 VS' 유럽-갈등에 관한 보고서'(세종 연구원)는 "이제 유럽과 미국이 세계관이 같다거나 심지어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는 식으로 가장하는 행위는 중단할 때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현재 이라크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갈등 원인을 명쾌하게 집어내고 있다.

이라크를 향한 미국의 총구에 맞서 '반전'을 외치는 프랑스와 독일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견서이기도 하다.

또 1.2차 세계대전과 탈냉전시대를 거쳐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에서 나타나는 미국(홉스적 세계관)과 유럽(칸트적 세계관)의 전략 문화의 특성과 차이를 짚어보고 향후 미국의 대외 정책 방향과 함께 이라크 전쟁 이후 국제 환경 변화를 예측하고 있다.

저자인 케이건은 유럽을 술집주인에, 미국을 보안관에 비유하면서 두 진영의 세계관을 설명한다.

무법자(이라크.북한)는 보안관에게 총을 쏘지 술집 주인에게는 총구를 겨누지 않는다.

따라서 술집 주인에게 있어서는 잠시 술을 마신 뒤 떠나는 무법자보다는 힘으로 자신의 명령을 강제하려는 보안관이 더욱 위협적이다.

실제 '국제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스스로 무법천지라고 생각하는 세계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는 총구를 들이대서라도 무법자를 제압해야 한다고 맹신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힘의 논리'가 배경이 되고 있지만 두진영의 서로다른 세계관도 큰 몫을 차지한다.

유럽은 파란많은 과거를 청산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파라다이스', 즉 칸트가 말한 '영구 평화'가 실현되는 세계를 추구하고 있으며 EU체제를 통해 실제 '파라다이스'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군사력과 이에 따른 '파워'만이 자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소련이 사라지고 테크놀로지 발전에 힘입어 미국이 주장하는 '무법자'에 대한 공격 빈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대의'가 곧 전인류의 '대의'로 강제되는 시대. 이제 유럽과 미국이 당면한 과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새로운 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다.

즉 저자는 유럽이 거구의 깡패(미국)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미국의 존재가 세계와 유럽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미국이 지목한 무법자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럽'의 현실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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