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위해 봉사할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27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이고시(61)군위읍 서부2리장.
이 마을에는 300여가구 1천1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군위읍내에서 가장 큰 부락으로 박영언 군수를 비롯한 많은 기관단체장이 이곳 주민이다.
이씨가 지난 1976년 5월 부터 현째까지 이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으니 도내 최장수 이장인 셈.
시골이지만 넉넉한 집안에서 태아난 그는 경북고(41회)와 중앙대 문리대를 졸업, 당시 농촌의 몇 안되는 수재로 그의 고교 동기생들 가운데는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한 경제계.법조계.의사 등 상당수 저명인사가 있다.
그런 그가 반평생을 촌동네 이장직에 머물고 있다.
주민들 중에는 "처음부터 공무원을 했더라면 지금쯤 상당한 고위직이 됐을 것"이라며 농촌에 뿌리를 내린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가 더러 있다.
대학 졸업후 당시 ㄷ보험사 간부로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 온 그의 인생 항로를 180도 확 바꿔놓은 계기는 "사업을 하겠다"며 전재산을 털어 제과 공장을 인수한 것이 화근.
적은 밑천에 맨몸으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뛰었지만 결국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낙향하는 신세가 됐다.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새마을운동이 한창인데 낙후된 마을에는 지도자 한 사람 없고 무지한 주민위에 군림하고 있는 행정관청을 보면서 마을 지도자를 자청한 것이 인연이 됐다.
주민들과 함께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을 개량하며 새마을운동을 펼치며 주민 1가구 1통장 갖기 운동을 펼쳐 새마을 금고의 전신인 동네금고를 만들었다.
또 행정을 모르는 주민에게 군림하던 당시 관청의 행태를 바로잡고 주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례를 찾아내 고발하는데 앞장섰다.
이때문에 주위로부터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는 남의 일에 유난히 잘 나서는 별난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씨는 "고향을 지키면서 힘없는 주민과 이웃이 정의와 원칙 앞에 불이익을 당하는데, 이것을 지키기 위한 비난이라면 당연히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며 "그동안의 삶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능력이 다할 때까지 이장직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군위사랑모임회, 군위화북댐 반대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지역에서 활동해 온 그는 최근 군내 184개리 이장협의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고 있으며, 빠른시일에 타.시도 이장들과 협의해 전국단위의 이장협의체를 구성할 계획도 밝혔다.
군위.정창구기자 jung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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