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 이래 지난 48년 동안 맡았던 사고 중 최악의 것으로 기록될 겁니다".
유해 신원 확인 작업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되돌아 가기 직전이던 지난 12일. 유해 발굴·신원확인 작업을 진두 지휘해 온 국과수 집단사망자 관리단 이원태 단장의 표정에는 피곤함과 홀가분함이 뒤섞여 있었다.
사건 직후 감식요원들이 대구로 온 지 무려 50여일. 본원은 물론 전국의 분원 인력까지 동원하느라 국과수는 정상적인 업무를 마비시켜야 할 정도였다.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대형 사건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유해가 하나 둘 드러나면서 '이거 몇달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유해 확인 작업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했다.
섹터로 나뉜 전동차 안 감식 현장에서 유해가 무더기로 발굴될 때마다 요원들은 흥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피로감으로 축적돼 갔다.
철야 강행군으로 감기, 설사, 치통에 시달리는 감식요원이 속출했다.
"그러나 우리를 정작 힘들게 했던 것은 사건 초반부터 대구시·경찰·유가족·언론매체 등이 정확한 유해 숫자를 물어오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로 일일이 해명하느라 정작 본 업무에는 신경 쓰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유해 숫자가 최종적으로 밝혀지기까지는 수천점의 유골 조각들을 거듭거듭 맞춰 봐야 하는 지루한 재분류 작업이 이어져야 하는데도 주위에서는 이를 모르고 성급하게 덤비더라는 것.
지난 12일 최종 집계된 유해 숫자가 2구 줄어든 것에서도 감식의 어려움은 증명됐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병원에서 다시 월배차량기지 감식장으로 실려온 유해가 몇 구 있었지요. 마지막에 2구가 줄어 든 것도 전동차에 있던 유해 조각이 병원에서 실려온 유해의 일부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에서는 일년 미만된 영아 사체가 있다고 잘못 가정하는 감식팀의 실수도 발생했다.
성인의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은 유해가 발견되자 감식팀은 영아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잠정 판단했다는 것.
이 단장은 그러나 이렇게 힘들어 하는 감식팀을 그나마 도와준 것은 유해들이었다고도 했다.
1080호 전동차 내부가 처참하긴 했으나 유해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더라는 것. 내부가 물에 젖었지만 진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유해가 흐트러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 사자(死者)의 마지막 증언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토록 자신들을 지켜줬다고 했다.
감식은 과학이니 만큼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단장은 감식팀 이외 관련자들의 몇가지 문제점도 지적했다.
하나는 관련 기관의 경험 부족이었다.
"대구시나 대구 경찰이 이같은 대형사건을 처음 접하다 보니 많이 우왕좌왕 했습니다.
그런 것이 눈에 띄었으나 국과수는 제3자라 직접 끼어들 수가 없었지요. 시나 경찰에 몇차례 조언해 주는 것으로 마쳐야 했습니다".
유가족들이 신원이 밝혀진 이후에까지 유해를 인도받지 않으려는 데 대해서도 놀라움을 호소했다.
"사건의 빠른 수습을 위해 우리는 밤을 새워 가며 유해 감식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원이 밝혀진 후에는 유가족들이 유해를 인도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은 것이지요. 그 때문에 감식요원들도 공황 상태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 단장은 신원 확인 작업을 마무리하고도 유해를 인도하지 못한 채 서울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쉽다고 거듭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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