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동상과 꽃과 약탈의 교훈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나 대중의 영웅을 기릴때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의 표시로 동상을 세우고 꽃을 바친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나 역사적 유적지와 중심가에는 그 민족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물들의 동상과 헌화를 흔하게 볼 수있다.

인류역사와 함께 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동상들의 거의 대부분은 오랜 풍화를 견디며 청동빛이나 회빛으로 바래져 가면서도 세월이 가면 갈수록 역사속에 담긴 경의와 신비의 무게를 더해간다.

그러나 그 민족과 인류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받지 못한 독재국가의 지도자들이 세운 동상들은 두가지 특징을 갖고있다.

하나는 대부분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죽은 뒤 민중의 손에 의해 세워지는데 비해 독재자의 동상은 자신의 생존시에 자신의 손으로 세워진다는 점이 다르다.

또하나는 독재권력자의 동상은 폭정과 독재권력이 끝나는 순간 민중에 의해 부숴지고 끌어내려진다는 점이다.

엊그제 전세계인은 후세인 독재권력이 무너지면서 그의 동상이 함께 붕괴되는 장면을 똑똑히 목격했다.

후세인을 위해 자살공격도 마다 않겠다던 민중들이 그들 지도자의 동상을 끌어내리며 '미국만세'와 '나는 미국인이다'고 외쳐대는 모습에서 대중은 때로 야누스의 얼굴을 갖는다는 냉혹한 진리를 확인하게 된다.

권력자의 허세를 위한 동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권력체계는 보다 더 빨리, 의외로 더 쉽게 붕괴된다는 사실은 역사속에서 수없이 보아왔다.

이제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린 미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을만큼 많은 권력자의 동상을 세워놓은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고 두렵다.

생존시 자신(김일성)의 동상을 70여개나 세우고 석고로 된 흉상을 전국에 3만개나 만들어 두었다는 북한을 놓고 부시쪽이 '생존시의 권력자가 자신의 동상을 많이 세운 전제국가는 결국 붕괴된다'는 역사의 교훈대로 약간만 건드려도 무너지리라 계산하고 있지않을까 두렵다.

더구나 높이 23m의 동상 등으로도 모자라 김일성 꽃과 김정일 꽃을 만들어 우상화(花)로 선전하고 있는 북한 정권이 과연 제3의 힘에 의해 붕괴될 시점에도 이라크와는 달리 동상과 꽃으로 결집시킨 대중의 충성심으로 정권을 지켜낼지 의문이다.

바그다드의 약탈을 보라. 이라크 백성들의 국민성 탓만이 아닐 것이다.

권력이 부패하고 절대권력이 강대할수록 무너질때의 반동에너지는 더 크다.

임진왜란때 우리의 역사속에도 절대왕권이 무력해지자 맨먼저 궁궐을 불태우고 역대로 내려오던 궁중의 보물과 귀중품을 약탈하며 사료(史料) 등을 불사른 것은 적군(왜군)이 아닌 우리 백성들이었다.

절대복종과 충성만이 존재했던 왕조시대의 민중에게도 두 얼굴이 있었듯이 탈북이 이어지는 굶주린 북한주민들의 마음 속에 '김정일 꽃'이 붉은 충성의 꽃으로 계속 피어나리라 믿기는 어렵다.

김일성이 사망한 8일과 각종 기념일마다 동상에 참배해야 하는 그들 가슴속에 바그다드 시민들과 같은 배덕의 씨앗은 없을 것인가.

후세인 동상의 붕괴와 바그다드의 약탈을 보면서 우리가 사랑하고 함께 번영해야 할 북한을 걱정해 보는 것은 이라크 전쟁으로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된 동족애 때문이다.

우리는 한민족의 통일형태가 외세의 군사력에 의해 김일성 동상이 끌어 내려지고 평양시민이 금수산의 사당을 약탈하는 식으로 이뤄지기를 바라서는 안된다고 본다.

한민족의 평화 공존, 외세의 부당한 압박이 없는 자주적 평화통일과 강대 민족국가로의 성장을 위해 북한 지도부 스스로가 이라크 전쟁의 교훈을 곱씹어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그래서 까다로운 조건없이 다자회담 테이블로 나오는 세계화된 변신과 정치감각에 눈뜨고 그것이 민족공영의 길을 트는 것임을 깨달아 줬으면 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남북은 함께 가야하는 2인3각의 관계다.

한쪽이 쓰러지면 같이 쓰러진다.

따라서 동상 세우고 꽃이름 짓는 일도 좋을지 모르나 이제 북한 지도부는 눈을 떠야 한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남북한이 함께 핵을 가지고 있으면 이라크 같은 꼴을 안당할거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 국력이 외세의 입김을 버텨낼만큼 커질 그날까지는 와신상담의 인내와 지혜 그리고 힘의 축적이 필요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다녀오면 뭔가 미국이 낸 숙제를 갖고 올 것이다.

아마도 풀기 어렵고 받아들이기엔 고까운 숙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김정일 위원장도 일단 노 대통령을 도와 함께 숙제를 풀어놓고 봐야한다.

자기 혼자 동상만 쳐다보고 꽃만 흔들고 있어서는 결국 역사의 교훈대로 민중의 손에 동상은 부서지고 꽃은 꺾이게 될 뿐이다.

이라크 전쟁은 해서는 안될 불행한 전쟁이었지만 어쨌거나 비핵 약소국들에겐 생생한 교훈이요 본보기 였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 명백하고도 뼈저린 교훈을 가볍게 보지 말았으면 한다.

후회는 항상 뒤에 오는 법이다.

김정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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