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전국적인 걱정거리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경제는 주력산업인 섬유가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고 사회는 연이은 참사로 비탄에 잠겨있나 하면 그 많다던 '인물'들은 어디로 갔는지 눈 닦고도 보이지를 않는다.
참으로 "이상하게 안 되네" 하는 절망감에 빠진 위기의 도시인 것이다.
이러한 위기 때 지역의 리더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민에게 희망을 심는 것이 아닐까. 이는 '새클턴의 위대한 항해'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영국의 탐험가 새클턴은 과학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던 1915년 남극에서 조난 당했다.
6백34일의 악전고투 끝에 대원 27명 전원 무사히 귀한 하는 기적을 낳았다.
이 기적의 원천이 다름 아닌 희망이었다.
그럼 대구에서 희망은 있는가. 우선 가장 중요하다는 경제를 보자. "반도체 이후는 뭘 먹고 살 것인가"하는 것이 나라의 걱정이라면 섬유이후는 뭘 먹고 살 것인가는 당연히 대구의 걱정이 되어야 한다.
걱정을 했는가? 그렇지 못했다.
대안이라는 밀라노 프로젝트를 보자.
98년부터 2003년까지 시행된 이 프로젝트는 분명 대구섬유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인 패션부분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점에서 실패에 가깝고, 또 프로젝트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대구섬유는 다른 지역보다 덜 발전했다.
전국비중이 95년 17.7%에서 2001년 15.1%로 오히려 낮아진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밀라노 프로젝트는 '대구섬유의 희망'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대구의 희망'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부산, 인천, 대전, 광주 등 소위 지방의 4대 도시는 모두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유독 대구만이 희망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부산은 세계 3위의 항구로, 인천은 허브공항 하나만으로도,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로, 광주는 광산업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는 그런 것이 없다.
밀라노 후속으로 나온 낙동강 프로젝트 역시 희망으로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다.
그동안 대구의 지식인과 대구시는 무얼 했는가. 고작 섬유산업 합리화 조치 하나 뿐이 아니었던가. 이나마 질적 개선보다는 양적 성장에 치우치는 방향설정의 실패로 희망이 되지 못했었다.
이제라도 대구 시민이 희망이라고 인정할 만한 '희망'을 내놓아야 한다.
입지여건이 나빠서라는 내륙지 탓만 할 때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상하게 안 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꼬인 것은 사실이다.
TK정권 시절 대구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삼성승용차는 대구로 오다가 권력의 이동과 함께 부산으로 이동되어 버렸고, 그나마 건진 삼성상용차는 IMF경제위기로 날아가 버렸다.
이러니 희망을 TK출신 대통령이나 TK가 지지한 대통령에서 찾는 소위'영웅대망론'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잘못 짚은 '희망'이라고 본다.
소위 TK정권 시절에도 지금의 밀라노 프로젝트보다 못한 섬유 합리화조치가 고작 아니었던가. 중앙정부가 해주기만 바라고, 지역 스스로 지혜를 모으고 스스로 일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더 큰 요인이다.
희망은 노력에 있는 것이다.
인재가 없다는 말도 그렇다.
TK지역은 세계가 놀란 조국근대화(산업화)를 이룩하고, 세계를 감동시킨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했고, 독립유공자의 숫자가 어느 고장보다 많고, 이 나라 민주주의 운동에 불을 지핀 2·28을 일으킨 자랑스런 고장이 아닌가. 이 만한 전통을 가진 고장이 어디 있는가. 이 전통을 살리는 데서 '인재의 희망'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이대로는 안 된다.
시민도 대구시도 가치와 의식을 모두 바꾸자. 그래서 새로운 분위기에 새롭게 시작하자. 바로 지역 혁신이다.
여기에는 대구시장과 대구의 지식인이 함께 있어야 한다.
다른 지방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면 우리는 '잃어버린 20년'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유니버시아드라는 국제행사도 코앞에 다가왔는데 언제까지 대구 시장의 리더십이 지하철참사의 시비에 휘말려 흘러만 갈 것인가. 법적 문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맡기고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념의 정치로 타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다.
내일로 지구가 끝난다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처럼. 그리고 리더는 임진왜란 때 김성일은 비록 정보판단은 잘못했지만 전란중과 그 후 일을 잘 처리함으로써 재평가를 받은 일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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