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떠나고파

지하철 참사에 이라크전은 물론 사스 파동까지 겹쳐 지역 경제가 가라앉고 사회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정치권이나 지도층이 속수무책으로 아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자 심지어 "대구를 떠나고 싶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이 좌절감과 암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출신으로 직장을 찾아 대구에서 생활한 지 2년 됐다는 민한기(32.대현동)씨는 최근 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아졌다고 했다.

민씨는 "마음을 붙이고 대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던 생각이 최근 완전히 사라졌다"며 "지하철 참사 이후 더 피폐해진 지역 정서와 경제 상황때문에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어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상인 김모(50.여.범물동)씨는 "이민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결혼 후 23년 동안 서울에 살 때는 고향인 대구가 아름다워 보였으나 2년 전 이사와 최근 지하철 참사까지 겪고는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괴롭다는 것. 김씨는 사건 발생 50일이 다돼 가도록 수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자꾸만 꼬여가는 것 같아 싫다고 했다.

주부 이영선(42.대구 율하동)씨는 "초교 4년인 둘째가 졸업하면 대구를 뜰 것"이라고 했다.

시민 정서가 메말라 가고 경쟁 의식은 더 치열해져 아이들 배울 것이 너무 없다는 것. 이씨는 "다른 도시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다는 학부모들이 주위에 적잖다"고 했다.

시민들의 무력감과 피로증에 대해 대구YMCA 김경민 관장은 "갈등만 있고 대안은 없으니 시민들에게 희망이 보일 리 없다"며 "시장과 고위공직자들이 폭넓은 정치력과 진지한 태도로 시민들의 고민을 끌어 안아 기초적인 것부터 서로 신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구대 사회학과 홍덕률 교수는 "시민들의 무기력증은 대구시의 위기 대처 능력 부족이 불러온 것"이라며 "시민.사회단체들이 자발적인 추모 행사를 통해 참사 분위기를 일단락 지은 후 새로운 대구를 만드는 미래지향적인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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