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로 대구 지하철 참사 발생 두 달을 맞았다. 그러나 워낙 큰 사건이라 지난 12일에야 유해 신원 확인 작업이 마무리되고 16일에야 인정사망 판정이 완료되는 등 시간이 걸린데다 추모 묘지공원 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건 마무리 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유해 신원 확인 및 인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12일 유해가 확인된 사망자 수를 191명으로 최종 집계했다. 참사 사흘째이던 2월21일 착수한 감식 51일만에 내린 결론이었다.
국과수 등 신원확인팀은 사건 다음날이던 2월19일 현장에 파견됐다. 서울 국과수 본원.분원 법의학자, 경북대 법의학팀, 치의학교수 등 70여명의 인력과 DNA 분석기, 치과용 방사선 기기, X레이 투시기 등 첨단 감식 장비가 총동원됐다.
1080호 전동차 유해는 대부분 고열과 불에 심하게 훼손돼 신원 확인이 난관에 부딪힌듯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충의 윤곽이 사건 발생 20여일만에 그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국과수측에 따르면 전동차 내 유해는 2월27일 149구로 추정됐으나, 3월12일 145구, 3월30일 143구로 실제에 근접해 판단됐다. 최종 집계인 142구(안심차량기지 수습 유해 1구 포함)에 근접한 것. 신원이 확인된 136구 중 132구는 유전자를 통해, 4구는 유류품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다.
하지만 유해 인도 작업이 벽에 부딪혔다. 희생자대책위가 3월10일 일괄 인수를 결정했기때문. 그런 가운데도 국과수는 3월22일 대구가톨릭대 테니스 선수 희생자 4명의 유해를 첫 인도한 것을 시작으로, 24일 3구, 4월4일 9구, 4월8일 4구, 17일 5구 등 모두 25구를 인도했다.
◇인정사망 판정 성공
사건 수습의 최대 과제이던 실종자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지난달 10일 구성됐던 인정사망 심사위 활동은 극심한 진통을 겪으리라던 당초의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신속하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심사위는 중앙특별지원단과 희생자대책위에서 각 7명씩 추천한 위원과 대책위 추천으로 선임된 김준곤 위원장 등 각계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돼 독자적인 인정사망 기준을 마련, 제출된 201명을 대상으로 개별 심사를 벌여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찰과 행정기관의 사실 조사를 통해 사망 확인 37명, 생존 확인 36명, 신고 취소 4명, 허위신고 1명 등 78명이 대상에서 제외돼 실질적인 심사 대상은 123명으로 줄었다.
심사위는 심사 착수 11일만이던 지난달 21일 64명을 인정사망 판정하기 시작, 28일35명, 이달 9일 1명 등 지금까지 100명을 인정사망 판정했다. 그 중 99명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작업을 통해 실제 사망자로 확인됐다.
그 덕분에 심사위의 판정이 신뢰성과 객관성을 얻게 됐고 유가족 항의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대구시.경찰.검찰 등이 모두 희생자대책위의 집단항의로 몸살을 앓은 것과는 극명히 대조되는 대목이다. 특히 김준곤 위원장은 초기에 포괄적 선(先) 인정사망을 희생자대책위로부터 요구받고도 "법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중대한 문제를 다루는 만큼 사건 당시의 명확한 증거와 정황 증거, 주변의 증언 등을 종합해 개별적으로 심사해 나갈 것"이라고 일축하는 등 엄정한 자세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는 또 지난 9일 남은 심사 대상자 23명 중 18명이 장기가출자.수배자 등이어서 이번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감히 인정사망 '불인정' 결정을 내렸으나 아직까지는 재심 요구 등 시비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수사 제자리 걸음
수사 주체가 경찰에서 대구지검으로, 다시 대검찰청으로 바뀔 정도로 오락가락해 왔다. 지난달 18일 대구지검이 사건을 맡겠다고 나선 바로 다음날 대검이 뛰어들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것. 수사 자체도 사건 직접 관련자들에 대한 것은 이미 마무리돼 기소까지 이뤄졌으나 현장 훼손 관련 수사에는 혼선이 거듭되고 있다. 지하철 납품 비리 등의 수사는 장기화될 전망.
사건 직접 관련자는 8명을 구속기소했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으며 3명을 무혐의 처분했다. 아직 계속되고 있는 녹취록 조작 및 단전 관련자 7명의 수사는 이번 주에 마무리 짓고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현장 훼손과 관련해서는 보존 책임이 있는 검찰 자체나 경찰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해녕 대구시장과 윤진태 전 지하철공사 사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대검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윤 전 사장에 대해 극히 이례적으로 3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 당했다. 조 시장도 청소 지시를 않은 것으로 사실상 결론난데다 윤 전 사장의 영장기각으로 예정됐던 추가 소환도 무의미해졌다.
이때문에 대검이 여론을 의식해 대구시장을 마구잡이로 소환, 대구시민들의 자존심을 뭉갰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현장훼손 수사 성과는 지하철공사 김모 시설부장을 구속한게 전부였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 자체에 대한 수사. 특별수사본부는 "자체 수사를 벌여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전동차 납품 비리 수사는 당초 대검이 직접 하겠다고 밝혔다가 경찰에 맡긴 뒤 수사지휘만 하고 있다. 경찰은 이렇다 할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수사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하철공사 운영 비리와 관련해서도 대검은 지난달 21일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의욕을 보였으나 지금껏 성과 브리핑 한 번 못할 만큼 진통을 겪고 있다.
◇안전성 높이기 지지부진
지하철 안전성 높이기, 각종 재해 예방 및 대처 체제 보강, 추모공원 조성 등 '참사 재발 방지책'이 활발히 논의돼 왔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어떤 것은 결론이 흐지부지됐고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도 있을 정도이다.
지하철과 관련해 요구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운영을 중앙정부가 맡으라는 것과 현재 운행 중인 지하철의 안전성을 높이라는 것. 그러나 지하철을 중앙정부가 맡는 일은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최종찬 건교부장관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지하철은 해당 도시 교통시설인 만큼 지자체 책임 아래 운영하는게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기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전동차 안전성 높이기도 중앙정부가 필요 예산의 3분의 1만 부담키로 해 '반쪽 보강'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나라당 이해봉 의원에 따르면 당초 대구시는 전동차 구입과 전동차 자재 불연성 개조 등에 필요하다며 872억원을 요청했으나 건교부는 301억원만 지원키로 했다. 현재는 좌석만 방염처리된 상태.
때문에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중앙정부가 약속만 해놓고 시간이 지나자 말을 바꾼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구지하철공사 노조 서진원 총무국장은 "두 달이 흘렀지만 중앙정부는 아무것도 준 게 없고 관련 기관들이 모두 손을 놔 버렸다"고 비판했다.
재해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가 안전관리 전반에 대한 정책 수립 및 조정기능을 갖는 국가안전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밑에 행정자치부 외청인 재난관리청을 오는 8월 말까지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그러나 재난관리청이 옥상옥 논란에 휩싸이고 소방 관계자들의 반발까지 사, 재난관리청 설치 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8월 출범 여부는 물론 소방 기관과의 관계 정립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방정책학회 등이 지난 달 21일 주최한 '국가 재난관리 체계 구축에 관한 공개 포럼'에서 충남발전연구원 최병학 연구위원(행정학)은 "모든 재난.재해에 대한 1차적 대응은 소방 기구가 전담하고 있다"며 "그 조직을 확대하는 것이 선진국 재난.재해 대응의 흐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포럼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의견을 보였다.
지하철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또 다른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자 묘역을 포함하는 추모공원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 문제 역시 대상 부지 문제를 놓고 갈등만 겪고 있는 중이다. 당초 대구시는 수창 묘지공원안에 '긍정적 검토' 방침을 밝혔으나 중구민 반발이 이어지는 등 갈등이 생기자 14일엔 '불가'로 입장을 정리했다. 이 문제때문에 장례 등 수습 작업까지 영향 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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