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주이민 100년의 숨결-마탄사스 지방회장 박창운 평가 엇갈려

' 라몬 박은 쿠바 한인사회 발전과조국 독립에 기여한 인물이기보다는 냉혹한 착취자로 재평가돼야 합니다.'

한인들의 쿠바 이민생활 여정에서 크게 활약한 라몬 박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는 1921년 능숙한 스페인어를

활용, 한인들의 쿠바 이민 수속을 돕고 마나티 사탕수수농장의 일자리를 잃은 한인들에게 마탄사스 애니깽농장 취업을 주선한 인물로 한국 이름은 박창운(박장을)으로 알려져 있다.

1921년 마탄사스에 설립된 국민회쿠바지방회 초대 총무에 이어 1929년 마탄사스 지방회장, 1931~1933년마탄사스의 민성학교 2대 교장 등을역임했다. 1926년 서문경과 함께 저임금과 생계난에 시달리던 한인 전원을 브라질로 이민시키기로 하고 재쿠바 브라질 공사와 교섭을 벌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했다.

쿠바의 일부 한인 후손들은 이민선조들은 '쿠바에 일자리도 많고 사탕수수농장 임금도 좋다는 박씨의 말에 속아 쿠바로 건너왔다' 면서 '그는 멕시코 유카탄에서 지주와 결탁한 계약청부업자로 일하며 돈을 모으고,쿠바에서는 지주나 공장주의 중간관리자 노릇을 하고 동포를 상대로 일자리 알선업을 하며 한인들의 임금을 받아 중간에서 떼먹었다' 고 나쁘게 평가했다.

박씨는 한인들 위에 군림하며 동포를 이용해 번 돈으로 상점 체인망, 가구점, 시계점, 고리대금업, 전기제품업등 각종 사업에 손을 대 1940년대 마틴사스 일대 최대 재력가로 떠올라 위세를 부리다 지난 59년 쿠바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 정권이 사회주의 노선을 택하자 재산을 처분, 미국으로 탈출해 67년 LA에서 사망했다는 것이 쿠바 한인들의 주장이다.

한인 후예들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박씨가 조국 독립을 위해 성금을 냈다는 기록이 전시돼 있는 것으로 안다' 면서 '그에게서 고통받은 한인들이 많으므로 한국정부는 쿠바에서 송금한 독립운동 자금의 진정한 기부자를 평범하고 힘없는 전체 한인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바나=강병균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