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공포가 지구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만, 천지는 환한 꽃대궐이다.
청도와 영덕에선 복사꽃이 분홍 구름을 이루더니, 도시의 주택가와 캠퍼스 등지에선 보랏빛 라일락이 사람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볕바른 뜨락에선 5월에 피어야 할 모란이 만개해 화중왕(花中王)답게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나무들의 어린 새잎은 시간시간 크기가 달라지고 녹빛이 짙어져 마술을 보는 듯 신기하다.
'봄 같은 기쁨'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4계절이 있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 신의 특별한 은총이 아닐는지.화려한 꽃잔치에 눈이 팔려있던 중 문득 한 편에 저만치 비켜서 있는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도시화로 옛모습의 그림자조차 사라진 고향에서 외지인들 틈에 어쩌다 마주친 옛 이웃사촌같은 나무. 지난 날엔 가장 집 가까이에 있는 나무로서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눈에서, 기억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하여 걸핏하면 베여지고, 축축 늘어진 가지는 경쟁사회의 이미지와 동떨어졌다하여 무시당하고 있다.
원래 버들은 사람간의 정(情)을 엮어주는, 낭만적인 이미지의 나무였다.
이몽룡이 멀리서 그네뛰는 춘향을 보고 방자에게 "저 건너 꽃과 버드나무 사이로 오락가락하면서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고 분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랑에 빠진 춘향도 버드나무 잎을 죽죽 훑어 물에 뿌리며 안타까운 정념을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옛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질 때 버들가지를 꺾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당(唐)의 시인 왕유(王維)가 멀리 안서(安西) 땅으로 떠나는 벗 원이(元二)를 배웅하며 읊은 시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는 특히 유명하다.
'위성땅 아침비가 흙먼지를 적시니(渭城朝雨읍輕塵)/ 여관집 주변의 푸른 버들잎 더욱 산뜻해라(客舍靑靑柳色新)/ 그대에 권하노니 다시 한잔 술을 들라(勸君更進一杯酒)/ 서쪽으로 양관을 나서면 벗이 없느니(西出陽關無故人)'.
곧 버들꽃이 눈처럼 휘날릴 때다.
올해도 버드나무가 백해무익하다며 눈 흘길 사람들은 적지않겠지.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가끔은 아래도 좀 보라고, 세상사에 복닥대지만 말고 때로는 유유(悠悠)하라고, 그렇게 버드나무는 말하는 것 같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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