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온갖 풍상 겪은 얼굴 그리기

화가 권순철(60)씨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8월 파리와 인접한 이시-레-물리노에 있는 그의 작업실이었다.

시민들이 모두 휴가를 떠나 도시가 텅텅 비었는데도, 그는 홀로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20평 남짓한 작업실을 가득 채운 그림 더미속에 파묻혀 열심히 붓질을 하던 그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날 그와 대구에서 온 화가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게 됐다.

평소 말수가 적은 그가 중국술 몇잔이 들어가자 "대구에서 전시회를 아직 한번도 못했어요. 꼭 한번 해야할텐데…"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경북고를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가 89년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 40년 넘게 고향에서 개인전을 한번 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한국에서 몇손가락 안에 드는 서양화가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 이룰수 있는 소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가 24일부터 5월18일까지 두산갤러리(053-242-2323)에서 열여덟번째 개인전을 연다.

힘찬 선, 꽉 찬 화면, 강렬한 색상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를 놓고 프랑스 비평가 프랑소와즈 모냉은 "표현주의적이고 시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조용하고 점잖은 성격과는 달리, 무척 격정적이고 강렬한 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그는 얼굴을 주로 그린다.

온갖 풍상을 겪은 한국 노인네들의 얼굴과 표정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한국사람들의 고난과 고통을 다소 일그러진 듯한 얼굴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표현주의적 형식을 빌려온 듯 하지만, 어찌보면 상당히 민중적인 그림이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프랑스에 살다보니 더욱 민족적인 성향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6·25때 아버지를 잃은 그의 개인적인 가정사와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1백여점의 전시작품중 80점 가까이가 얼굴 그림이다.

1, 2년만에 한번씩 대구에 내려와 머물때 그린 화원유원지 인근 풍경과 '정중동'의 느낌을 주는 산(山)그림도 여럿 있다.

무거운 색상과 강한 터치로도 깔끔한 여운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화다.

80년대부터 올해초까지 그린 그림들이 두루 전시돼 회고전 성격의 전시회다.

다소 어려운 작품인 듯하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 볼만한 전시회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