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 인간에 가장 인간
오늘날 인간은 '육체인'이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던 '두뇌인'은 영 기가 죽어가고 있다.
아니 머리를 아주 내리 숙이고 있다.
대신 몸이, 몸뚱이가 설쳐대고 육체가 나부대고 있다.
가로되, '다이어트'로 '피트니스'로 또 '찜질방'과 사우나와 '마사지'로 육신을 다듬는다.
거기 더해서 별별 미용술로 피부에 광을 낸다.
한 술 더 떠서, 원색으로 염색한 머리칼로 머리의 모양을 낸다.
이래서 오늘날 인간의 몸은 자연도 아니고 생체도 아니다.
만들어진 '인공 육체'고 '기계 육체'다.
이 경우, 당연히 '성형 수술 ', '미용수술'의 위대한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한데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인공 육체'를 겉으로 요란하게 치장한다.
이건 인간 육신의 내장(內粧)에 겹친 외장(外裝)이다.
그러기에 바로 여기서 토목공사나 건축공사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외장 한답시고 몸을 갖가지 패션으로 꾸며댄다.
온갖 장신구도 큰 몫을 한다.
드디어 인간은 '가장(假裝)인간'이 된다.
승용차가 이 때, 제 구실을 말해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남자들의 경우라면 명함이 역시 빠질 수 없다고 앞으로 나설 것이다.
무엇인가 직함이며 벼슬이름이 요란하게 진열된 명함을 보면 그 주인이 광고 간판 투성이의 어느 상가 건물 같이 보인다.
이래서 오늘날 인간은 '인공 육체'의 인간이고 또한 '가장 인간'이다.
한데 문제는 이처럼 인간들이 바로 인공과 가장 속에서 거의 배타적으로 자기를 찾는다는 데에서 불거진다.
그건 허울 찾기고 허수아비 찾기와도 같은 것이지만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거기에야말로 자기증명이 있고 , 소위 '셀프 아이덴티티'가 있다고들 생각하는 추세가 강하다.
인간 각자의 주체성도 거기서 얻어내고자 한다.
참 묘한 일이다.
자기 상실의 선상에서 자기 찾기를 하자고 드니, 기가 찰 일이다.
어느 명 탐정이 이를 감히 해낼까?
*정체도 주체도 없다
문지르고 마사지하기. 벗겨내고 덧칠하기. 깎아내고 덜러 붙이기 등등…. 이토록 요란하게 손질된, 그리고 만들어진 육신이 어느 사람의 '본색'일 수가 없다.
그건 잘 해야 가짜다.
육신이 가짜니 인간도 가짜일 수밖에 없다.
자기증명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오늘의 자기 찾기다.
정당의 정책도 정부의 시책도 필경은 닮은꼴이다.
정책은 있는데 막상 정체(正體)가 없다.
시책은 있는 것도 같은데 주체가 없다.
정체나 주체가 있어도 정책과 시책에 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정당도 정부도 가짜라고 하면 말이 지나칠까?
지긋지긋한 정치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 두자. 다시 인간 육신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공이고 가장이기에 아무리 알몸이 되어 보았자, 그건 '알몸'일 수가 없다.
아무리 발가벗고 홀딱 벗고 해보아도 소용없다.
나의 맨몸은 '맨 몸'이 아니다.
그러니 내게 내가 있을 턱이 없다.
천재 시인, 이상의 작품 흉내를 내면 '나는 외출 중'이다.
'나는 옷을 벗는다.
발가숭이가 된다.
한데도 내 알몸이 없다.
무슨 사란 랩 같은 것
그게 알몸에 씌워져 있다.
허위, 가식, 가설, 편견.
그 따위와 같은 사란 랩'.
아주 근자에 미국인이 쓴 시의 일부다.
'사란 랩'은 우리의 '클린 랩'같은 것으로 음식물 포장에 쓰는 얇은, 투명한 비닐이다.
알몸도 가짜란다.
무엇인가 눈에 안 보이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단다.
읽는 동안 눈이 아리고 마음이 쓰렸다.
정치도 정부도 필경 마찬가지다.
치장할 대로, 치장한 주제에 정직한 알몸 다 드러내는 척 해보아야 소용없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을 지나면서 이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김열규 계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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