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바람개비-우리 것은 좋은 것?

어느 유명 국악인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어가 됐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 하다.

한글 푸대접이 그 한 예다.

거리의 간판, 광고, 아파트 이름 등 생활 전반에서 외국어 사용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터에 최근 정부가 외국인 투자유치 환경개선 명목으로 국내 방송광고에 외국말과 외국노래를 허용하도록 방송광고 규제 최소화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때문에 한글학회와 한글단체가 방송광고 외국어 사용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좥외국인 투자환경 개선 종합대책(안)에 대한 반대성명을 발표하는 등 발끈하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미 외국어 간판으로 뒤덮인 거리에 방송광고도 외국어로 도배해 버릴 길을 열어 놓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먹는 것, 입는 것에서 나아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서조차 '우리 것'이 버틸 마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갈수록 도를 더해 가는 조기 영어열풍에다 조기유학 붐에 발맞춰 보고 듣는 광고도 외국어로 하자는 이야긴지 헷갈린다.

이미 우리 식탁은 수입농산물이 아니고는 제대로 밥상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됐고, 옷에도 외국어 투성이며, 노랫말 역시 국적없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련의 붕괴로 과거 대국(大國)의 이미지를 빼앗겨 버린 러시아가 모국어 보호를 위해 언어 순화법을 추진하는 것이나 프랑스가 프랑스어 정화법을 만들어 자국어 보호에 앞장선 사례들과는 대조적이다.

일제(日帝) 당시 우리 말과 우리 글을 빼앗겨 신음하는 가운데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말과 글을 내팽개쳐 버림으로써 '빼앗긴 땅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희(古稀)를 앞둔 나이에 민요전수에 여념이 없는 대구의 한 할머니 국악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식당을 경영하는 이 할머니 국악인은 틈을 쪼개 동네 주부대학이나 할머니 가요교실 등에서 신명나는 민요 한자락 가르치기를 마다 않는 열성파다.

이 할머니에게서 국악을 배우던 대구의 한 교사는 국악에 심취, 부인과 함께 국악을 배우더니 한발 더 나아가 가야금도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아침마다 그윽한 가야금 소리로 자녀들 잠을 깨워 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명종은 소용이 없어졌다.

이웃에서도 가야금 소리를 아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등 반응이 좋다고 할머니 국악인은 귀띔해주었다.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 대신 새벽 공기를 가르며 은은하게 들려오는 가야금 곡조에 잠을 깨는 아침. 우리 것도 이렇게 활용하기 나름 아닐까. 우리 것이라고 너무 푸대접 하지 말자. '집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고 했다.

우리가 푸대접하는 '우리 것'이 밖에서 대접받길 바랄 수 있을까.

정인열 문화부 차장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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