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구지하철이다.
대형 참사로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은 대구지하철은 출발부터 논란이 많았다.
사업 검토 당시, 대구는 원형 도시이기 때문에 지하철보다는 외곽 우회도로 건설이 더 효과적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광역시 체면에 지하철이 없어서야…"라는 자존심에 눌려 '지하철 반대' 주장은 기도 펴지 못했다.
그런데 대구 지하철을 타보면 동쪽으로는 안심역이 종점이다.
조금만 더 가면 대구와 경북 경산시 경계지점인 숙천이 나오기 때문이다.
마치 경상북도가 금단의 땅이라도 되듯 이를 침범하지 않으려고 경산 땅 코 앞에서 지하철은 끊어지고 만다.
지하철은 지역 최대의 사회 간접자본이다.
그런데 한창 속도를 내서 달려할 지점이 바로 종점이라니…. 10㎞만 더 달리면 하양 대학촌이 있다.
매일 등교하는 대학생 1만5천여 명이 지하철 연장 운행을 학수고대하고 있는데도 지하철은 오늘도 시(市) 경계선을 넘지못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은 경기도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고 유럽의 '유레일'은 열차가 배에 실려 도버해협을 건너고 있는데도 21세기 대구지하철은 대구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1억원씩의 적자를 보면서도 애써 시장을 비켜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도간 행정협조 체제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사회적 손실은 이렇게 발생한다.
대구판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현장이다.
이제는 시도민 대부분이 지하철 연장 운행을 원하고 있는데도 아직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직된 사고가 주민의 삶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중앙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렵사리 이룩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은 물거품이 된다.
행정중심으로 지역을 묶은 것은 질서와 체계관리의 편의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경제권역 중심으로 지역이 엮여나가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세계화 시대에 대구 안심역은 마치 갑옷이나 정조대를 진열해 놓은 중세 박물관앞에 서 있는듯한 착각을 준다.
대구에는 또하나 기막힌 사례가 있다.
상공회의소가 2개나 된다.
광역시에는 상공회의소가 하나라는 원칙이 있는데도 대구상의와 달성상의가 엄연히 존재한다.
내막을 알려면 얘기가 길어진다.
어쨌든 이 두 상의가 티격태격, 올해로 8년째 병존하고 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더 들면 '담장허물기'사업이다.
집 담장을 허물면서 이웃간 마음의 벽도 같이 허물자는 취지로 97년 대구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했다.
당시 상당수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기위해 대구를 다녀갈 정도로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지금 실적을 보니 뒤늦게 출발한 서울에 뒤지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는 최근 고려대 캠퍼스의 담장 2.2㎞를 헐어내는 대신 화단을 조성하거나 감나무 등 1천그루를 심어 주민휴식공간을 조성할 것을 고려대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장은 앞으로 연세대 등 5개 대학의 담장도 허물도록 권장할 방침이라고 한다.
부산과 강원도에서도 이 사업에 열정적이다.
대구시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추진하다보니 최근 열기가 식은 것 같다"고 했다.
대구는 결국 '담장허물기'를 대구의 상품으로 '브랜드'화 하지 못하고 아이디어를 역외로 수출하고 만 셈이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경상도 기질을 태산준령(泰山峻嶺)이라고 했다.
태산은 스스로 위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태산은 혼자 빼어나기를 좋아해 작은 산들을 주위에 거느릴지언정 비슷한 수준의 산들과는 어울리기를 싫어한다.
둘이 합치고, 하나가 양보하면 분명 더 큰 산이 될 수있는데도 이를 거부한다.
태산 기질은 글로벌 시대에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네트워크 시대와 지식기반사회에 홀로 서겠다는 도도함은 곧 만용을 의미한다.
협조.조화.관계설정에서는 낙제점이다.
지하철이 시계(市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상공회의소가 병존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때마침 양성자가속기 역내 유치를 위해 대구시민이 들고 일어났다.
벼랑에 걸린 지역경제를 살릴 마지막 기회인만큼 지역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니면 치워라'식의 이분법(二分法)적 외곬수는 곤란하다.
이웃을 보고, 전체를 살피는 안목을 갖고 목소리를 높여야 실익을 챙길 수 있다.
'무대뽀'정신은 외견상 카리스마가 있어보이나 문제 해결 능력면에서는 빵점이다.
태산준령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어느새 대구시민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둔갑한 것은 아닌지 뼈아픈 반성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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