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오십보와 백보

우리사회에 진보와 보수의 두 물결이 와류를 이루고 있다.

진보와 보수는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사회발전에 없어서 안될 두 개의 가치다.

이들 정치적 특성의 양끝에는 반동주의와 급진주의가 있다.

시간의 뒤쪽을 바라보면서 개혁적 변화를 구하는 것이 반동주의고, 앞쪽을 지향하면서 과격한 변화를 구하는 것이 급진주의다.

보수와 진보는 그 중간에 들어있는 스펙트럼이다.

한 개인으로 따져 보수와 진보는 절대적인 개념이라 할 수 없다.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생활에서는 보수를, 생활의 진보주의자가 정치적 보수를 지향하는 교차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도 보수·진보로 분류되지만 이분법적 굴레를 씌우는 게 바람직한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언론이란 정해진 규범의 틀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언론 스스로가 새롭게 만든 규범에 적응해 가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론사가 보수가 될 수도, 진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 자체가 아니라 양 진영의 도덕성 문제다.

특히 진보는 도덕적으로 더욱 단단한 무장을 필요로 한다.

진보의 존재 이유가 기존의 부조리와 비윤리를 깨자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의 무장태세가 허술해 비판당하는 보수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역대 정부들의 개혁실패도 그 본질은 도덕성의 실패였다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와 정연주 KBS 사장 임명 제청자가 여론의 도마에 올라 있다.

두 사람 공통의 문제가 지식인으로서의 도덕성이다.

고씨는 과거의 급진적 소신과 발언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면 국정원장 직을 수락하지 않았어야 했다.

국정원이 어떤 일을 해야하는 기관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급진적 시각을 굽히지 않으며 권좌를 포기하는 것이 그 하나요, 과거를 참회하고 국가와 법에 충성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그 둘이다.

이러한 선택을 외면하는 것은 지식인의 도리가 아니다.

▲정연주 임명 제청자에 이르면 더더욱 유감을 갖게된다.

정씨는 모 신문사 논설주간으로 있을 때 지도층 자녀들의 미국국적 취득을 맹타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두 아들이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불가피한 사정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개인별로 따져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 치고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비판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조차 만들지 못하는 다수 국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의 천자문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에게 공공의 대사를 맡길 수 있겠는가.박진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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