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충무공의 '경영 철학'

역사는 모함과 거짓으로 점철돼 있다.

숱한 사람이 '왜곡된 진실'의 희생양으로 바쳐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무공 이순신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억울한 상황을 서애 유성용(柳成龍)이 정확히 묘사했다.

"이순신이 원균을 구원해 준 후로 둘사이는 아주 좋았으나 공을 따지게 되면서 둘 사이는 멀어졌다.

원균의 모함으로 조정에서도 이순신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러나 임금은 의문을 품고 문신 남이신(南以信)을 한산도에 파견, 사실을 조사해 오도록 했다.

▲그가 전라도 땅에 닿자 병사와 백성들은 모두 나와 길을 막고 이순신이 무고하게 잡혀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남이신은 이를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옥에 갇혔다.

그 때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이 홀로 '그는 명장이오니 죽여서는 안되옵니다.

군사상 문제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라고 간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한차례 고문을 한 다음 사형을 감형하고 삭탈관직만 시켰다.

이순신의 노모는 아산에 살았는데 그가 옥에 갇혔다는 말을 듣자 고통스러워하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징비록'에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반칙을 모르는 '진실 게임'의 선구자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무과에 급제했다.

그때 병조판서가 자기 딸을 이순신에게 첩으로 주려하였으나 "내 처음 벼슬길에 올랐는데 어찌 권세있는 집안에 의지하여 승진하기를 원하겠는가"라며 거절했다.

옥에 갇혀 장차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뇌물을 쓰라는 간수에게 "죽었으면 죽었지 어찌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해서 살기를 바라겠느냐"며 호통쳤다.

▲오늘은 충무공 탄신 458주년이다.

그를 정치·군사적 측면이 아닌 '위기관리자'로서의 연구가 한창이다.

그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거짓과 모함, 온갖 불운과 박해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켜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는 아무리 졸병이라도 군사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말할수 있게 했으니 '민주주의'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이미 터득한 셈이다.

▲말에서 내려 피란민의 손을 잡을 정도였으니 '인간 경영'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거짓을 모르는 강직함은 바로 '신뢰 경영'의 본보기가 아닌가. 그가 세상을 떠난지 4백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뇌물과 분식회계와 투명성 부족이라는 '늪'에 빠져있다.

후손으로서 충무공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기조차 부끄러워진다.

유성용은 "그는 운이 부족해 백 가지 경륜을 하나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한탄했다.

이제 그 백 가지를 하나씩 발굴해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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