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라리 IMF때가 그리워요

지난 연말부터 불어닥친 소비심리 위축 사례가 안동지역을 비롯, 북부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급속 확산되면서 덩달아 지역 경기침체가 바닥이다.

벌써부터 "IMF때보다 더 심각하다" "이대로 가다간 아예 상가들이 줄도산하겠다"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심지어 대다수 서민층들은 불필요한 지출을 피하기 위해 바깥 출입을 자제하면서 초저녁부터 주택 골목이나 아파트 주차장은 서둘러 귀가한 차량들로 만원사례를 보이는 등 생활패턴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심상가 밀집지에는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철시하는 상가와 휴.폐업하는 상가가 늘고 있는 반면 도시외곽 주택지 주변 상가들이 새로운 소비처로 각광받는 등 소비 중심지마저 바꿔 놓았다.

▨도심상가 휴.폐업 속출

소비위축의 가장 큰 피해지역은 단연 도심 상가들. 안동시 삼산.서부리 등 상가 밀집지역에는 최근들어 20여곳이 휴.폐업 상태이고 점포정리와 이전 등 전업을 서두르는 상가들도 10여곳에 이른다.

심지어 안동보건소 옆 분수대 부근 상가지역에는 길을 마주하고 있는 가게가 잇따라 문을 닫거나 전업을 준비하는 등 지역경제 침체 상황을 한눈으로 살필 수 있다.

이 지역에서 20년째 의류업을 해 온 김성환(54)씨는 "IMF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매출이 지난해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최악이다"고 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본사 차원에서 실시하는 정기세일과 별도로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세일판매하는 등 매출과 상관 없이 손님끌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음식의 거리에 자리잡은 한 식당은 점심시간에는 아예 찾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식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하루 평균 30만원의 매출로 임대료.인건비 등을 겨우 맞추고 있다.

식당 주인 민희영(여.49)씨는 "지난 연말부터 매출이 급감해 평소의 절반도 안된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이 기회에 처분하고 아예 용상동 주택가 쪽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면서도 식당을 인수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옥동 주택밀집지 주변 신상업지역 '시한폭탄'

주택밀집지 주변에 새로 조성된 상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9년 이후 수십만평에 새로이 조성된 '안동 옥동 신시가지'를 두고 최근 금융가 주변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당시 옥동 대규모 상업지구로 도심상권이 빠져나오면서 지난 3년간 부동산 임대활기와 반짝 호경기를 누렸으나 지난해 말부터 사실상 밑바닥 경기로 추락하고 있다.

특히 조성 당시 대부분 건축비를 금융권 대출로 감당했던 상가 건물주들은 임대소득으로 빚을 갚아왔으나 최근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세입자들이 빠져 나가자 속수무책으로 부도.도산에 내몰리고 있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이 매각을 서두르고 있으나 부동산 가격이 한껏 부풀려져 있고 경기 침체가 계속돼 매입자가 나타나질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부동산중개인 손형식(64)씨는 "옥동 신시가지 조성에 들어간 수천억원의 돈이 대부분 금융권 빚"이라며 "벌써부터 경기침체로 거품이 빠지면서 도산을 맞은 건물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선 대형사우나의 경우 하루 입욕객이 1천명을 넘어야 현상유지를 하지만 가계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침체 등으로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어 경영압박이 심상찮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노래방 등 주점 40∼50여 곳이 들어서 영업중이지만 일부 업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현상유지를 못해 임대료조차 감당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사채를 빌려 쓰면서도 일수돈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건물주 최성두(68.옥동)씨는 "경기 활성화로 소비가 늘어야 임대료 수입 등으로 금융권 빚을 갚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게 경기침체로 멈춰버려 수천억원이 옥동 신시가지에 묶여 자금흐름이 멈춰버린 동맥경화 상태"라고 했다.

▨서민가계 소비심리 위축 최악

평균 월 급여가 140만원 정도의 회사원인 김준호(37.안동시 법상동)씨는 요즘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지난 98년 IMF사태로 봉급이 30여만원 정도 줄고 만 6년이 지났으나 고작 8만원 정도 오른데 비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실제 체감경기는 IMF때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

게다가 큰 딸이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작은 아이도 어린이집을 다녀야 해 그 당시보다 추가로 지출되는 교육비가 월 40만원이 넘어 다른 불필요한 지출을 없앨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김씨의 부인 최은영(33)씨는 최근 아이들을 모두 내보낸 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 4시간씩 생활정보지나 전단지 배포 등 아르바이트 전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 부부가 한달간 외식비.의류구입비 등 문화생활에 지출하는 돈은 고작 10여만원도 안돼 1년 전의 30%에도 못미칠 정도로 소비를 줄이고 있다.

김씨는 "여러 곳에서 앞으로의 경기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며 "물가는 오르고 소득감소와 고용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소비감소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당분간 이같은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라 했다.

▨소비자들 경기상황 비관적 전망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가 조사한 1/4분기 대구.경북지역 소비자동향 조사에서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향후 경기상황이나 현재의 생활형편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향후 6개월 동안의 경기전망이나 생활형편, 가계수입 전망에 대한 지수(CSI)도 대부분 평균치(100)보다 크게 밑돌고 전국적 지수보다도 낮아 지역경기에 대한 어두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소비자들은 향후 6개월 동안의 물가수준도 유가상승 등으로 물가인상에 따른 불안심리가 높게 조사됐으며 금리도 계속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4/4분기에 비해 서민들의 가계지출 심리는 교육비를 늘리는 대신 외식비, 여행비, 문화비, 의류비 등 대부분 불요불급한 곳에서 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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