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등등의 말이 있다.
말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려준다.
성서에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는 말이 절대적이다.
말이란 그러나 묘하게 만들어져있다.
시니피앙(기표)과 시니피에(기의)란 말을 언어학에서는 쓴다.
시니피앙은 표현(또는 서술)이고 시니피에는 그것들에 담긴 내용이다.
그런데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같지가 않다.
전연 다른 성질의 것들이다.
가령 나무라는 말이 있다면 이것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인 나무와는 아무런 관계(연관성)가 없다.
한쪽은 소리고 한쪽은 사물이다.
그러니까 말은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서로 간의 이런 따위 관계를 늘상 착각한다.
나무는 으레 나무(내용, 물질)와 동일한 것으로 치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말이 없었다면 문명도 문화도 있지 않았으리라. 말은 의사소통의 역할을 한다.
저것은 나무다'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꽃과도 구별하게 되고 벌레와도 구별하게 된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차차 사물에 대하여 눈을 뜨게된다.
이런 것이 사랑이란 것이고 저런 것이 미움이란 것이다고 가르치면 아이들은 그런가 하고 그것을 뇌에 새긴다.
이리하여 사랑과 미움이 탄생하고 구별된다.
이른바 카오스(혼돈) 상태에서 세상이 코스모스(질서)로 변한다.
천지개벽이란 것이 이렇게 해서 열린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 성서의 그 기록도 위와 같은 상태를 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에게 말이 없었다면 우리는 인간일 수가 없었으리라. 동물의 단계에서 지금도 머뭇거리고 있어야 했으리라. 사물과 사태를 분간한다는 것, 즉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 된다.
구약성서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금단의 과실에 관한 일화는 결국 의식을 인간이 가지게 되었다는 그 앞뒤 사정을 우화식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겠는가?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인간이 문명과 문화를 가질 수 있는 자질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이 되는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비극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의식이 없었다면 인간은 죽음도 몰랐을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동물에게 죽음이 없듯이 말이다.
어느 시인은 말이 없는 세상을 해방의 세상이라고 읊고 있다.
죽음으로부터도 해방된다.
우리는 말이란 감옥에 구금돼 있다.
그러나 말을 떠나게 되면 우리는 문명과 문화를 잃게 된다.
손익계산이 어떻게 될까?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극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횡설수설이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보는 듯도 하고 현대인의 심리적 소외현상, 가치관의 붕괴를 보는 듯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의사소통이 원활히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흔히 자기에게 불리한 소리를 해놓고는 내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얼버무리는 그런 표피적인 상태와는 다른 현실이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근원적인 그 독을 지금 목격하며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의식하게 해주는 것도 아이러니컬하게도 말이다.
말 때문에 인간은 불행해질는지도 모른다.
모국어 하나만 가지고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벅찬 일이 한둘이 아닌데 뭣 때문에 두 개나 세 개나 남의 나라말을 배우려고 하는가? 실용성 때문이다.
그 실용성 때문에 온 지구가 지금 들끓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시대라고 해서 제각기 남의 나라 말을 익히려 한다.
그것이 구약성서에 기록돼 있듯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일킬지 지각 못하고 말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벨탑의 그 혼란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뭐가 뭔지 분간을 못하게 되는 그런 사태가 우리 눈 앞에서 이미 연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슨 수로 이 상태를 미연에 막아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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