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박창근 논설위원-대구도약 디딤돌로

근 200명가까운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방화 대참사(大慘事)는 단 1명의 테러범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 악몽을 또다시 재현할수도 있는, 우리의 공공시설이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하게 노출돼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뼈아픈 교훈을 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더욱이 지금 우리사회가 뭔가 중심을 잃고 어수선하고 산만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실을 놓고 볼때 언제 어디에서 제2, 제3의 모방범죄가 일어날지 그야말로 불안하기 짝이 없는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참극은 이번이 그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안전담보'를 유족들은 물론 전국민들이 중앙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단호하게 다잡아 달라는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수대교가 두동강 났을때나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때도 정부는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 다짐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리고 급기야 대구상인동 지하철 1호선 공사장 대폭발참사가 났고 그게 끝인가 싶더니 대구 지하철2호선 신남네거리에서 토사가 무너지면서 새벽녘 시내버스가 그대로 추락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중앙로 참사 유족들의 오열이 계속중인 지난 4일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지척인 반월당부근의 2호선 공사장 고압전선에 또 화재가 나면서 대구시민들의 가슴을 다시금 철렁거리게 했다.

대구와 지하철의 무슨 악연이 이렇게 질기게 지속되는지 참으로 원망스럽다.

지하철 참사엔 이례적으로 중앙정부까지 적극 개입해 수습에 나서 재발방지노력을 여러가지로 했지만 솔직하게 말해 앞으로도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결국 이런 참극의 악순환도 따지고 보면 '빠듯한 예산'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우리의 행정'에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 안팎의 '우리의 수준'으로 아무리 말로만 외쳐봤자 개미쳇바퀴 돌 듯 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가족은 잃었을망정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 해 달라는 유족들의 끈질기고 비장한 각오가 우선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더욱 깊게 심어줬고 흡족하진 않지만 예방시설도 급한대로 앞가림은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대구시장을 비롯 대구시나 지하철공사 직원들이 홍역을 치뤘고 끝내 행정부시장은 수모끝에 불명예스런 '명예퇴직'으로 자리를 떴다.

그러나 아직 '합동장례'와 '추모공원' 문제로 사건발생 80일이 지난 이 시점까지 대구시 대책본부와 유족대표들이 대치성 협상중에 있다는 사실은 어찌됐든 안타까운 노릇이다.

가족들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이야 이루 형언할 길이 없고 그 어떤 보상으로도 대신할 수 없지만 이 정도밖에 더 이상 어떻게 할수도 없는게 우리가 처한 국가현실인걸 어쩌랴. 미국처럼 천문학적인 전쟁비용을 감수하며 기어이 아프간에 이어 이라크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석유자원까지 쟁취할 여력이 우리에겐 없는걸 한탄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구시정'의 '무성의'와 '미숙함'을 무던히도 탓을 해봤지만 행정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어쩌랴. '그릇의 크기'가 그것밖에 안되는걸 그 이상 질타를 해봤자 이쪽의 애간장만 더 탈 뿐이다.

문제는 이런 '대구의 수치'가 80여일이 지나도록 중재에 나서 접점(接點)을 찾아줄 '리더그룹'이 없다는데 있다.

대구엔 이렇게도 '원로'들도 없고 '인재'도 없단 말인지 그게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앞으로도 지역에 큰 문제가 터지면 이렇게 떠내려 가도록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교육도시요 전통문화 유산을 가진 3대 도시 대구의 위상이 이러도록 추락했단 말인지 참으로 답답하다.

대구시의회는 뭘하는 곳이며 지역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길래 이렇게 수수방관하는가. 우리가 시민들의 대표를 왜 선출하는가. 겨우 지역경제계 인사들이 막판에 나선게 고작이다.

한때는 이 나라를 이끈 중추인물들이 무수히 배출된 대구가 이렇게 추락하고 볼품없는 '시골'로 전락해 버렸다니…. 경제도 침몰하고 여론주도층까지 몰락한다면 대구엔 미래가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보수니 진보니 티격태격 계층간 갈등만 조장할게 아니라 건전한 리더그룹들이 스스로 뭉쳐 '침몰하는 대구'의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는 풍토 조성이 절실함을 이번 참사는 대구사회에 교훈으로 던졌다.

이른바 애향심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참사가 화해와 화합으로 승화할수 있게 유족들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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