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음자인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숫자가 또 다른 의미 전달수단으로 곧잘 쓰이고 있다.
즉 몇개의 숫자조합에서 나타나는 발음상의 유사점을 이용하여 광고적 효과나 언어의 유희적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아마 가장 일찍이 사용하고 또 가장 쉽게 접할 수있는 숫자 놀이는 바로 '전화번호' 일 것이다.
이삿짐 센터에서 즐겨 쓰여지는 전화번호는 2424(이사이사)이고, 신속배달을 주무기로 삼는 택배서비스나 중국집 등에서는 8282(빨리빨리) 전화번호가 많이 쓰인다.
그리고 가구 교환센터 혹은 고물상 등의 업체에서는 4989(사고팔고)라는 번호를 쓰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만드려면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오리구이식당은 5292(오리구이), 구이집은 9292(구이구이) 페이트 가게는 7777, 변호사사무소는 2848 등과 같이 많이 만들어 낼 수있다.
한국인들은 죽을 사(死)자와 동음이라 하여 숫자 4를 기피하는 편이다.
그래서 4층 이상 건물은 분명히 4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병원, 여관, 아파트 등의 건물에는 4동 혹은 4호실을 보기가 드물다.
나는 이러한 한국인의 숫자 개념과 관련된 황당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절친한 친구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어 나를 초대하였다.
나는 그가 적어준 주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그 친구가 이사간 곳은 모 아파트 102동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큰 아파트 단지에서 내가 과연 집을 잘 찾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초대 받은 날이 되어 그 주소대로 친구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친구의 아파트는 101, 102동만 있는 아파트였다.
1동부터 100동까지 아파트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는 그 아파트 102동 앞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단 두동 밖에 없는 아파트라면 1동, 2동 이라 붙이면 되잖을까?
나는 숫자에 대한 인식 역시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중국 역시 이러한 숫자놀이가 있긴 하지만 표의 문자인 한자의 특성상 그다지 발달되지 못했다.
그래서 인지 나는 한국어의 이러한 특성이 신기하기만 하다.
공경신( 孔慶信·중국·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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