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전날 밤에는 마치 초등학생 소풍가는 설레임이 온몸을 헤집고다녀 더러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가끔씩 파격(破格)을 원하는 현대인에게 골프만한 스포츠가 없기 때문이다.
양탄자같이 매끈한 파란 잔디밭을 하얀 공으로 수놓겠다는 흥분과 기대감에 마음은 벌써 풀밭에 가있다.
그러나 출발점에 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긴장돼 어깨는 굳어지고 더 잘 쳐야겠다는 욕심이 앞서 제 실력이 도무지 발휘되지 않는다.
그래서 '1번홀'은 대개 뒤땅치기와 머리 때리기의 연속이다.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지만 새로운 출발에는 항상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 정신없이 1번홀을 마치고 나면 일행 중에 누가 이런 제안을 한다.
"첫 홀은 올 보기". 첫 홀이라 아직 몸이 덜 풀렸으니 모두에게 평균점수를 주자는 제안이다.
물론 규칙 위반이다.
그러나 프로도 아니고 어쩌다 골프장을 찾는 에버리지 골퍼들은 위반인 줄 알면서도 이를 슬그머니 받아들인다.
'첫 실수'를 인간적으로 너그럽게 서로 용납해주는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국내 언론사의 편집·보도국장 28명을 청와대로 초청, 국정 현안에 대해 무려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노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감이 있다"며 "경제에 대해 씩씩하고 낙관적인 비전을 보여줄테니 어려울 때 언론이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정부 각 부처가 달라진 문화를 아직 확실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 더 조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뒤 골프에 비유, "두 번째 홀부터는 잘하도록 하겠다"며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털어놨다.
▲골프에서 1번홀 잘못을 눈감아주듯 새 정부와 언론은 대개 첫 6개월은 밀월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참여 정부는 출발 3개월 남짓만에 국정 관리능력의 문제점이 노출돼 버렸으니 국민들의 실망감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뒤늦게나마 노 대통령이 '1번홀'의 실수를 인정하고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새로운 국면전환을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다행이다.
▲아마추어가 첫홀을 망치는 요인은 기량이 떨어지거나 연습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한번 보여주겠다'는 욕심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실수를 많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물며 백가쟁명의 정치판이 아닌가. 노 대통령은 '첫 홀 버디' 욕심을 버려야한다.
자칫 혼자 외줄을 타고있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골프채를 잡은 노 대통령이 이제 '2번홀' 티박스에 들어섰다.
첫 홀에서의 미스샷 악몽을 말끔히 씻고 호쾌한 타구를 보여주기 바란다.
아무리 마음 좋은 골퍼라도 '멀리건'을 2번씩이나 달라고 하면 눈총을 줄 수밖에 없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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