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 등대설립 100돌'호미곶 등대지기 정태영씨-'나만의 외로움'태워 바닷길 밝히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위에 차고…'. 지난 1903년 인천 팔미도 등대가 불을 밝힌 지 내일(6월1일)로 꼭 100주년을 맞는다.

그래서 포항시 대보면에 위치한 호미곶등대의 '등대지기' 정태영(46)씨의 감회도 오늘따라 무척 남다르다.

비록 호미곶의 역사는 95년에 머물지만 100년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군복무 시절 전방 철책선에서 온통 산만 바라보며 지냈던 정씨는 전역후 고향인 호미곶에 돌아와서는 고향과 바다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어릴적부터 바다를 보고 자라면서 선원이 돼 대양을 누비고 싶었던 꿈을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를 도와주는 길잡이가 되기로 마음을 바꾼 것. 그로부터 18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강산이 두번이나 변할 만큼이라니…". 정씨는 지난 85년 울릉도등대 항로표지원(등대지기)으로 출발해 5년을 보낸 뒤 호미곶 등대와 감포 송대말등대 등에서 등댓불을 밝혔으며 호미곶등대는 이번이 두번째 근무지다.

이젠 등대지기 중에서도 고참급이다.

노랫말처럼 일반인에게는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등대지기지만 남모를 애환도 많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늘 외롭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개인적인 시간 여유도 없어요".

정씨의 너털웃음이 하얀 포말처럼 바닷가에 흩어졌다.

애창곡이 '등대지기'일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의 애창곡은 나훈아의 '녹슬은 기찻길'이다.

정체된 바다생활을 벗어나 철길따라 육지를 누비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그래도 가끔씩은 등대지기가 되는 길을 문의해 오는 청소년들이 있다고 귀띔하는 정씨.

정씨가 등대지기로 있는 호미곶 등대는 지난 1908년 12월에 세워진 연화벽돌식 등대. 벽돌로만 쌓은 등대로 높이가 31m나 되며 12초마다 한번씩 깜박이는 등대빛이 닿는 거리가 30㎞에 달한다.

그 동안 150여명의 등대지기 선배들이 거쳐갔다.

등불이 있는 등탑까지 오르려면 회오리모양 108개의 철제 계단을 108 번뇌를 털어내듯 한계단 한계단 정성스레 올라야 한다.

"한줄기 등불이 숱한 선원들의 안전을 지켜준다는 벅찬 가슴 때문에 잡념도 떨친 채 경건한 마음으로 등불을 비춥니다". 정씨는 정년(60세)까지 등대지기로 살 것을 다짐하며, 등대박물관에 설치된 모형 등대를 어린 자식 얼굴 어루만지듯 쓸어내렸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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