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화들짝 피어났다 사라져간 봄꽃처럼 봄날은 그리도 빨리 가버리고, 어느새 초여름이다.
아침, 출근 길에 일부러 대봉동의 건들바위 앞길을 지나가 본다.
길 양 옆으로 제법 둥치가 굵은 은행나무가 늘어선 그 길은 가로수의 색깔에서 사철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얼마전만 해도 연둣빛이던 잎들은 이제 선명한 초록으로 바뀌어졌다.
한여름의 농익은 암록색 이전에 잠시동안 볼 수 있는, 청춘의 신선한 빛깔이다.
이번 주엔 단오(端午)와 망종(芒種)이 있다.
단오는 설 추석과 더불어 우리네 3대 명절의 하나였지만 요즘에야 그저 달력상에만 남은 잊혀진 명절이다.
하지만 예로부터 아낙들이 창포물에 머리감고, 그네를 뛰었고, 풍류어린 단오부채가 나왔던 이때부터 초여름이 시작된다.
또한 망종은 벼 보리 밀 등 까끄라기 있는 곡식(芒種)을 뜻하는 이름그대로 보리며 밀을 거두고 볏모를 심는 절기. 들판은 어느덧 살굿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바람은 기분좋을만한 훈풍. 일렁이는 살굿빛 보리파도를 보노라면 오래전 가수 박재란이 통통 튀는 목청으로 불렀던 가요 '산너머 남촌'이 흥얼거려진다.
보리밭 위 하늘 높은 데서는 종다리가 지저귀고, 먼데 숲에서는 꿈결인양 뻐꾸기소리가 들려온다.
보리를 베어내면 들판 곳곳에선 보리깍대기를 태우는 연기가 장관을 이룰 것이다.
지난 60,70년대초만 해도 그것들은 농가 아궁이의 훌륭한 불쏘시개감이었다.
따닥따닥, 콩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리드미컬하게 타들어가는 그 소리는 여름 농가의 적막한 공기와 기막히게 어울렸다.
흘려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자연음(音)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선 이태리 작은 섬의 우체부 마리오가 이 섬에 머물다 칠레로 돌아간 세계적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보내주기 위해 섬의 바람소리, 파도소리, 갈매기소리 등을 녹음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도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는 한 남자가 열병같은 사랑의 아픔을 겪은 뒤 드넓은 보리밭 속에서 일렁이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비로소 희미하게 미소짓는 모습이 나온다.
이제 봄날은 떠나갔고 여름이 시작됐다.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번 째 날(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이라는 말처럼 '이 여름은 우리 남은 인생의 첫 번째 여름'이 아닌가.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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