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청산 한 자락 베어 머리에 쓰고음섣달 그믐날에 대숲으로 오너라

지금 오지 않으면

일만년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

네 가슴에 든 상사병 같은 것,

문둥병문둥병문둥병 같은 것,

어이 휫새, 速去千里로 보내고

연등할미 늪새바람 가벼이 타고

당집 뒤뜰로 오너라.

대숲으로 오너라.

권국명 '귀면언(鬼面言) 2'중

우리 전통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무속적인 정한을 일렁이는 접신으로 노래하고 있다.

풀 길 없는 한과 고혼들의 그리움을 연등할미, 높새바람, 상사병의 무가적(巫歌的) 톤으로 되살리면서 아득한 혼령들을 대숲으로 불러내고 있다

한 때 권국명 시인은 우리 시에 숨긴 이런 좋은 광맥을 캐고 있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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