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일 남은 생이라면 뭘 할까

불행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지난 2월 대구지하철을 타고가다 화염속에서 울부짖었을 여고생, 미군의 폭격에 가족을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된 이라크 소년….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줄 상상이야 했겠는가.

살얼음판을 걷듯 온갖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우리들에게 '나에게 남겨진 생이 3일밖에 없다면(생각하는 백성 펴냄)'은 적잖은 흥미를 던져주는 책이다.

글쟁이 18명의 생각을 훑어보는 맛도 괜찮겠지만, '나라면 과연 어떨까?'하고 독자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게 좋은 점이 아닐까.

"불현듯 아내는 그 사흘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궁금해졌다.

아내의 대답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첫날은 먼저 수박을 한통 먹고, 배터지게 포도를 먹으면서 하루종일 피아노를 칠 거야' '둘째 날은 하루종일 섹스를 할 거야. (물론) 사람 계속 바꿔가면서' '마지막 날에는 여섯살 난 딸애를 무릎 위에 앉히고 하루종일 얼굴을 쳐다볼거야'".

(문화평론가 김지룡)

"첫째 날-무작정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다.

둘째 날-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자식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시는 분이다.

셋째 날-부모들의 불화로 어려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낸 딸아이를 만나야 겠다.

이제는 술도 마실줄 아는 딸아이를 만나 그냥 말없이 소주잔을 나누고 싶다".

(출판평론가 김영수)

"회사도 정리하고 여러가지 얽혀있던 재정문제와 업무를 다 정리해야지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죽고 나면 그 일을 누군가는 하게될 것인데 왜 이렇게 안달복달이지? 아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서귀포 앞바다에서 툭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아내와 아들은 날아갈 듯 기뻐하며 감격해했다.

가장 보람있는 일이란 결국 내가족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임을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터넷서점 리브로 본부장 박기현)

"내 생각으로 내 인생책의 마지막 3페이지는 특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나는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을 해서 내 주어진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 나의 인생책장 맨 아래에 씌어진 평소에 소원했던 사람들을 만나 오해, 또는 앙금을 풀 것이다".

(현문가족대표 이기현)

"첫날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다.

산장에서 모포 한장을 덮고 달콤한 잠을 잘 것이다.

둘째 날에는 내 글 보따리를 챙겨 한줄 한줄 읽고, 한권 한권 책을 챙긴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셋째 날에는 골프방송에 채널을 고정시키고 골프경기속으로 빠져든다.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궤적을 떠올리고, 공이 바닥에 떨어져 떼굴때굴 구르다 멈춰 서던 모습을 떠올린다".

(소설가 임동헌)

필자들은 대부분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온 자취를 더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작정 취하고 탐닉하는 저급한 소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필자들이 40대 이상의 나이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얘기가 아니겠는가. 정말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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