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 판매소에서는 복권도 판다.
그래서 차표를 사는 사람들 틈에는 더러 복권을 사는 사람도 섞여 있다.
복권장수는 연신 '부자 되세요, 부자 되세요'하면서 복권을 팔고 있다.
복권을 사 가는 사람들 중에는 술을 마셨는지 몸을 똑바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중년 남자도 있고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보이는 넥타이 매고 양복 입은 청년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천원짜리 몇 장으로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들이 복권 장수의 인사말처럼 부자가 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나도 한때는 줄곧 복권을 샀다.
그것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고 순전히 셋방살이 굴레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셋방살이하는 사람의 아이는 소리내어 울어도 안된다.
또 셋방살이하는 집 아이와 집주인의 아이가 싸우면, 비록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라 하여도 십중팔구는 셋방아이들이 진다.
셋방살이를 하다가 보면 이렇게 아이들까지도 기죽어 산다.
전기 요금이나 수도 요금 배분에 불만이 있어도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낸다.
전기요금도 전기요금이고 수도요금도 수도요금이지마는 그보다는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서 셋방살이할 때 가장 서러웠던 것은 분뇨 수거료를 불공평하게 분담했던 일이다.
부자들의 귀에는 아주 쩨쩨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내가 처음 복권을 사게 된 것은 사실 이렇게 부당하게 부과하던 분뇨 수거료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오두막일지언정 우선 내집이 있어야 했고, 내집을 장만하려면 그만한 돈이 있어야 했는데 하늘에서 혹시 돈벼락이라도 떨어진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가난한 월급쟁이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집을 살 생각을 했겠는가.
그 시절에 나에게 있어서 복권은 희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한낱 허황한 생각이었을 따름이지마는 당시에는 이것을 사기만 하면 곧장 일등으로 당첨이 될 것만 같았고, 그렇게만 된다면 당장 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못하여 이것이 비록 휴지 조각만도 못한 것이 되어 버린다고 하더라도―실은 대부분 허탕을 치고 마는 것이었지마는 ― 당첨 번호가 발표될 때까지의 몇 날 동안만이라도, 막연하게나마 나도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같은 것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단돈 몇 백원짜리 위안물치고는 이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가 복권 사는 일은 거의 없다.
복권은 노숙자나 셋방살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이들 이외에, 복권을 많이 사는 사람들로 이들보다는 좀 낫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가난한 월급쟁이나 날품팔이가 고작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은 결코 장난으로 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복권은 입덧이 난 아내에게 신포도 한 주저리도 못 사주는 남자가 산다.
복권은 또, 주전부리할 것이 없어서 강냉이 튀밥 껍데기까지 주워 먹고 설사하는 아이의 아버지가 산다.
부자들처럼 단순하게 심심풀이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지난날 내가 분뇨 수거료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복권을 사기 시작했던 것처럼, 이들은 이것을 사야 할, 일일이 풀어놓을 수 없는 절박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난뱅이들에게 있어서의 복권은, 아주 적은 돈으로 아픈 곳을 다독거릴 수 있는 진통제와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에 복권에 당첨되어 수십억 원을 탄 사람이 있다.
복권사는 사람은 일포식(一飽食)도 재수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막연하게 나마 자기의 홍두깨에도 이만한 꽃이 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복권장수는 연방 '부자되세요, 부자되세요' 하면서 복권을 팔고 있다.
천원짜리 몇 장씩 들이밀면서 복권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며칠 뒤에는 이것이 비록 대부분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겠지마는, 지난날에 내가 가끔 그랬던 것처럼, 이들은 이것으로 단지 몇날 동안만이라도 무슨 희망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