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고은 시인의 '1950년대'복사본을 읽다가

그슬린 모기 한 마리의 그림자를 만난다

녀석의 다리가 붙잡았던 마지막 공기 한 올이

보인다, 여름의 전선을 따라

하루살이처럼 잉잉대며 달려들었던

한강철교의 핫바지들이 보이고

빗발치던 네이팜탄 섬광 속에

부황의 얼굴들이 보인다.

석기시대 유물발굴터 그슬린 볍씨 한 알처럼

복사기에 뛰어든 모기 한 마리의 형체가

그날 문득 햇볕 속에서 되살아났다.

신기훈 '아! 50년대'부분

플라톤은 시인을 영매자(靈媒者)라 했다.

무속인의 대나무 대신 이 시인은 전후 시집 복사본에 찍힌 모기의 실루엣에 접맥되어 6·25 고혼들이 겪은 1950년대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 시대를 전연 살지 않았으면서도 한강 철교의 핫바지와 네이팜탄 속 부황의 얼굴들을 역사적 사생아로 각인시켜 떠올리고 있다.

민족적 아픔을 영매라는 레이더에 포착시켜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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