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와 법조계 사이의 관계가 최근 급격한 냉각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20일 대전지법 손철우 판사(형사4단독)가 1999년 1월의 이른바 '대전 법조비리' 보도와 관련하여'가볍지 않은' 형을 선고한 것이 그 원인이다.
손 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전 대전 MBC 기자 고모(43)씨에 대해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으며 동일한 혐의로 기소된 대전 MBC 기자 3명에 대해서는 징역 4~8월에 집행유예 1, 2년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각각 선고함으로써 지난 수년간 언론과 법조계가 밀고 당기던 긴 공방을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그 같은 판결을 두고 언론계는 물론 법조계 일부에서도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논란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비리가 보도되었을 당시 공공연하게 나돌던 판.검사와 변호사간의 부적절한 유착의혹이 사실로 밝혀짐에 따라 법조계 내부의 자성과 함께 사법개혁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언론의 적극적인 보도가 있었기에 법조계 개혁담론의 실마리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 시각이 있기도 했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리나라 법조계 주변을 맴돌던 음성적 부패의혹에 경종을 울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대검찰청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현직 검사와 판사들이 무더기로 '떡값', 술접대 내지는 금품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대가성 있는 수수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민주주의 사회의 공조직 중에서도 가장 공정하고 청렴한 위상을 가져야할 법조계에 이 같은 '주고받음'을 두고 '은밀한 뒷거래'로 의심하지 않을 사람이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이번 재판을 통해 당당히 자신과 검찰에 대한 무혐의를 사실관계로 확인하고만 것은 법원의 잣대가 결국 자의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언론은 사회적 감시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는 언론의 정기능을 발휘하기 위하여 언론자유라고 하는 지고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판결은 당시 보도를 했던 언론의 공익적 정기능을 외면한 적절치 못한 결정이라고 판단된다.
오히려 사건관련 당사자였던 법원이 자조직 방어심리에서 필요 이상의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나 하는 의혹을 버리기 힘들다.
징역 8월에 법정구속까지 시켰을 뿐만 아니라 집행유예와 함께 주로 파렴치범들에게 내리는 사회봉사명령을 기자들에게 내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법원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사법부에 대한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보도내용이 허위사실인 경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의 참된 뜻을 제대로 간파하고 내린 판단인지 의문스럽다.
조각사유 전제조건 중 보도의 진실성, 공공성, 상당성의 원리를 제대로 참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상당성의 원리란 기자가 본의 아니게 허위사실을 진실로 잘못 판단하고 이를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대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법적 책임을 면제한다는 원리이다.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기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했다면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해 너무 지나친 해석을 내린 점이 없지않다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이기도하다.
법 앞에 공정, 평등하고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의 고유한 권한이고 또 이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이 아니면 누가 진실을 위해 비리를 보도하겠는가. 아직 정보공개법조차 정착하지도 못한 데다가 여전히 법조계가 보도의 '사각지대' 내지는 '성역'으로 여겨지는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적 법 감정을 비추어볼 때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언론의 취재보도 역량을 크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언론자유마저 침해할 소지가 크다.
증거인멸의 소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만큼 불구속기소로 한 상태에서 항소 재판부의 전향적 판결을 기대해본다.
최경진 대구가톨릭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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