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생활글-나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단어의 이미지라면 너그러움, 존경, 든든함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것과는 약간 다르다.

친구를 좋아하고 인스턴트 식품도 좋아하고 놀러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너그럽기도 하지만, 든든함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불과 이년 전에서 일년 전까지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1996년에 제대하여 운 없게도 1997년에 IMF를 맞았다.

그 때문에 문구 회사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지산동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게 되셨다.

그런 아버지가 내 눈에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워 보일 리가 없었다.

3학년 때는 실과 선생님께 아버지의 직업을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했다.

치킨집을 했었던 약 2년간 우리집 사정은 꽤 어려웠다.

경제적인 문제로 1학년 때부터 다니던 피아노 학원도 쉬게 되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 동생은 항상 입가에 웃음을 띠고 다녔다.

아버지와 엄마의 말다툼이 좀 잦아졌지만 우리 가족은 거의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씩은 눈물로 눈이 빨갛게 되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부모님이 밉진 않았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우리 가정의 처지가 싫었다.

아버지께선 나름대로 가정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애를 쓰셨겠지만 난 그것을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짜증스러웠다.

한창 가족과 들로 산으로 여행도 가고 주말을 즐길 나이에 닭 냄새 나는 지하상가 한쪽에 틀어박혀 숙제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싫었다.

내가 뛰놀고 싶고 가족과 함께 들로 산으로 주말을 즐기고 싶을 때 아버지는 물론 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때는 그만큼 넓게 생각할 만큼의 철이 들진 않은 것 같다.

아버지는 요즘 주말만 되면 치킨집을 할 때 못한 만큼 가족과 함께 놀고 싶으신지 나들이를 가자고 하신다.

며칠 전에는 유명 메이커의 인라인 스케이트까지 사오셔서 가족 모두 월드컵 경기장으로 나들이를 갔다.

이제 나는 장난스럽고 친구를 좋아하고 인스턴트 식품까지 좋아하는 개구쟁이 아버지, 넓고 커다란 그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나도 좋다.

저번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 난다.

그 책에서는 '행복해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행복해지는 데는 굳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끔 바쁘셔서 가족 나들이에 같이 가지 못할 때는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아버지의 자리가 아닌가 싶다.

전에도 그랬었지만 이제 아버지는 정말 내게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되었다.

비오는 날 나를 비 맞지 않게 해 주는 우산 같이, 내가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아버지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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