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가장 살기 힘든 나라'(?)

우리는 흰옷을 좋아해 온 단일민족이다.

그래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는 자부심을 가져 왔다.

그 자의식은 고려 말 몽골 침략이 가져온 국가 존망의 위기 때 본격화됐으며, 한민족의 뿌리로 상정된 단군(檀君) 설화가 체계적으로 연구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라 한다.

이 같은 우리의 '민족주의'는 외침과 국난에 맞서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고, 다시 한국 전쟁과 남북 분단을 경험하면서 근대 민족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통일 민족국가' 수립이 절실한 과제이며, 민족주의가 '성스러운 이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민족주의는 무비판적으로 숭앙, 방어적 기제로만 작동해 왔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민족주의는 '우리'와 다른 '남들'과 나누어, 그 위에서 '우리'만의 단결을 지향하는 '닫힘의 논리'이므로 배타적이고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 이분법은 결국 '우리의 단점'과 '남들의 장점'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드는 함정을 동반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122명을 대상으로 주택.의료.행정.교육.환경.교통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점 만점에 3.5점을 넘는 분야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교통과 환경 분야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단다.

심지어 싱가포르.홍콩.태국 등 아시아에서 14년 이상이나 거주한 어느 외국 기업인은 '한국이 가장 생활하기 어려운 나라'라고까지 지목했다고 한다.

▲지난해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는 우리나라가 동북아 경제 중심 국가로 도약하려면 노동 유연성 확보, 외환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영어 능력 향상, 개방적 국민의식 등이 5대 조건이라고 지적했었다.

이들 조건 개선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게 하는 요인으로 배타성을 들기도 했다.

한 외국인회사 사장은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한다는 부정적 인식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만, 우리의 배타성.폐쇄성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세계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국제시민으로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길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사회에서는 필수적인 다원성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돼버렸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민족적 감성과 고유의 민족문화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민족주의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배타성과 폐쇄성을 극복하면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위상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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