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인간만이 문화적인 동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자리매김한데는 생물들 가운데 모방(흉내내기)에 가장 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흉내내기를 통해 학습하면서 문화를 발전시켜온게 바로 인간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물고기부터 온갖 생물에 이르기까지 흉내내기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저급하나마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수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지호 펴냄)는 동물들이 모방을 통해 문화를 만들고 진화를 한다는 새로운 이론을 주창한 책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리 듀거킨(루이빌대학 교수)은 "모방은 동물 사회와 인간 사회의 성장과 진화를 가능케 해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힘"이라고 했다.

TV프로그램인 '동물의 세계'처럼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쉬운 사례를 제시, 비전공자도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다. 원제는 '모방 인자(The Imitation Factor)'.

▲짝짓기의 모방 문화=길이가 2cm에 불과한 작은 물고기인 거피(guppy.송사리과의 민물고기)의 짝짓기는 철저하게 동료를 흉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암컷은 유전적으로 화려함을 타고난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성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암컷들이 짝을 선택하는 것을 보고 모방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뇌 크기가 핀 머리 정도밖에 안되는데도 서로의 짝 선택을 본뜨는 것이 재미있다.

새들과 포유동물들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수컷이 많이 있음에도 한 수컷이 암컷들을 거의 독차지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짝짓기 경연장에서 벌어진 실험에서도 무희새가 그러하듯, 멧닭도 '상위 수컷' 한마리가 암컷의 약 80%를 독차지한다. '상위 수컷'이 짝짓기를 하고 빠른 시간에 또다시 짝짓기를 하는가 하면 나이 든 암컷은 젊은 암컷보다 3일 먼저 짝짓기를 하는 등 상대방의 행동을 모방하고 배운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원숭이의 문화 창조법=1953년 일본 고시마 섬에서 벌어진 원숭이 실험. 유명한 원숭이 '이모'는 연구자들이 준 고구마를 근처 개울물에 씻어 먹었다. 얼마후 이모의 동료들과 친척들이 뒤를 이어 고구마를 씻어먹는 기술을 배웠다.

또 섬의 원숭이들에게 밀을 주었다. 밀을 해변에 던져 놓았기 때문에 모래가 뒤섞여 먹기에 불편했다. 그러던 중 이모가 모래와 뒤섞인 밀을 물에 던져 씻어냈다. 그 뒤를 이어 이모의 동료와 친척들도 이 신기술을 재빠르게 배웠다.

▲이기적 유전자=유전자가 모든 행동을 결정할까? 사실상 '만물은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로봇'이라는 유전자적 결정론(이기적 유전자론)은 진화나 동물들의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다.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는 유전자와 문화 두가지 요소를 모두 고려하는게 옳다.

각종 실험에서도 문화적 진화와 유전적 진화가 기묘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거나 둘중 어떤 조합이 우세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인간과 동물들은 유전자와 문화를 통해 스스로 변화해가고 진화해가고 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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