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역감정 이렇게 풀자(1)-역사적 뿌리의 허구

영남인, 호남인에 대한 서로의 편견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지역갈등의 출발점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사료 중 하나가 바로 '훈요십조'다.

태조 왕건이 남겼다는 고려의 통치이념 훈요십조. 그 중 제8조는 뿌리깊은 지역갈등, 특히 호남차별을 담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차현이남(車峴以南:차령산맥 남쪽)과 공주강외(公州江外:금강 바깥쪽)는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배역하였으니 인심도 역시 그러하다.

(중략) 선량한 백성이라도 벼슬자리에 들지 말게 하라'. 한마디로 전라도 사람에게 권력을 주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이라면 지역간, 특히 영.호남 갈등의 뿌리는 무려 1천년 넘게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는 훈요십조를 의심의 눈길로 바라본다.

건국대 신복룡(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훈요십조는 허위"라고 강변한다.

거란 침입때 불타 없어진 줄 알았던 훈요십조가 80년 뒤 신라계 신하인 최항의 집에서 발견된데 의혹을 둔다.

왕실의 일급문서가 어떻게 80년간 신하의 집에 보관됐을까. 신 교수는 "당시 권력투쟁 중 신라계가 백제계를 견제하려 했고, 이런 배경에서 조작 의혹은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또 왕건은 호남인들을 관직에서 배제하기는 커녕 요직에 대거 등용했다는 것. 왕건이 평생 스승으로 삼았던 도선국사나 개국공신 신숭겸,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예견했던 최지몽은 모두 호남 출신이었다.

아울러 거란 침입 당시 현종은 강원도나 경상도가 아닌 이른바 '배역의 땅'인 호남을 피난지로 택했다.

호남을 멀리하라는 유언과는 맞지 않다.

해석이 잘못됐다는 주장도 있다.

연세대 설성경(국문학과) 교수는 "왕건은 호남이 아닌 다른 지역을 '배역의 땅'으로 지목했다"고 말한다.

'차현이남 공주강외'는 흔히 받아들여지는 충청 일부와 전라도 전체가 아니라 차령산맥과 금강 사이 일부 지역, 즉 청주.부여.공주 등지에 불과하다는 것. 이들 지역은 궁예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왕건이 궁예를 몰아낸 직후 잇따라 반란을 일으켜 왕건을 위협했던 곳이다.

그러나 훈요십조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 것은 최근일 뿐, 과거 역사 속에서 제8조의 위력은 꾸준히 확대 재생산됐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중환은 택리지를 통해 호남의 풍수와 인심을 혹평했다.

이런 사상은 여과 없이 후세에 전해졌고, 급기야 '전라도 사람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뒤에 배신한다'는 식의 헐뜯기로 이어진다.

호남을 악의적으로 배척해서 이익을 얻은 지역은 어디일까. 고려 태조부터 인종초까지 요직 인물의 출신지를 보면, 1위는 경기도로 50명, 2위는 경상도로 36명, 전라도는 5위로 21명이었다.

현격한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조선 중기 이후 영.호남 모두 중앙 권력에서 배척됐다.

광주대 고영진 교수는 "인조반정 이후 호서와 경기의 서인들이 득세한 뒤 다른 지역은 권력에서 배제됐다"고 말한다

설성경 교수도 "정여립 사건은 호남 차별을, 이인좌 난은 영남차별을 공고히 했다"고 지적했다.

18세기에 서울과 타지역간 대립이 심화되며 지역민에 대한 악의적인 비난이 공공연해졌다.

영남에 대해선 '풍속이 타락하고 게으름에 빠져 서로 비방한다'고, 호남에 대해선 '인심이 사납고 가볍다'는 부정적 인식을 퍼뜨렸다.

이같은 지역차별에 대해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풍수설의 근거없음을 지적했고, 정약용은 '통색의'에서 "온나라 인재를 등용해도 모자라는데 열 가운데 여덟, 아홉은 내친다"고 지역차별을 비판했다.

근거없는 지역 헐뜯기는 인터넷에서도 기승이다.

지난 9일 유치원생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한 고교생이 징역 20년을 언도받았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이를 두고 뜬금없는 지역감정이 붙었다.

"이 학생은 어디 출신이라더라. 그쪽 사람들은 안된다"는 글이 뜨자 반박이 줄을 이었고, 결국 욕설이 뒤섞인 난장판으로 변했다.

비난 근거는 대부분 "누구로부터 들었다"거나 "군대 또는 회사에서 겪었다"는 것. 주관적이고 편협한 경험과 잠재적인 편견이 뒤섞였다.

그러자 한 네티즌은 "일년 전 월드컵의 환호성은 어디로 갔느냐"며 "상대 지역을 헐뜯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중세사학회장인 경북대 최정환(사학과) 교수는 "훈요십조의 조작을 논하기 전에 그 내용이 고려사에 남아있다는 사실과 당시 정치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아직 학계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정작 문제는 후세 사람들이 이를 비판없이 받아들인 점"이라고 지적했다.

취재팀=서종철.김태형.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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