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국회 앞에선 좀체 보기 드문 집회가 열렸다.
각종 집회 시위를 취재 보도하던 기자들이 신문개혁을 부르짖으며 직접 거리로 나서 스스로 뉴스의 주인공이 된 것.
이날 열린 '신문개혁 3대 입법 쟁취 결의대회'엔 전국 각 지역신문사 기자, 사무직원 등 언론노조 조합원 3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때마침 내리는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GO! 신문개혁'이란 글자를 찍은 붉은 띠를 들고 '국민이 주인되는 신문개혁'을 목청 높여 외쳤다.
'수구족벌언론' '신문권력' '편파왜곡보도' 문구엔 근조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지역신문발전 지원법 제정, 정기간행물법 개정, 여론 독과점 규제를 위한 신문 점유율 제한법 제정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이 전국민중연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함께 개최했다.
"비데나 자전거 등 경품을 무차별적으로 배포하는 몇몇 신문사 때문에 다른 대부분 신문사들이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신문시장을 바로잡지 못하면 국가 전체 여론이 몇몇 중앙지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입니다".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참가자들은 '국민이 주인되는 신문개혁 우리 손으로', '지역언론 없이 지역 없다, 지역신문발전법 제정하라'는 등의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이날 결의대회엔 각 지방의 신문기자뿐 아니라 인쇄기술노동자, 광고국 직원 등 가리지 않고 참가했고 방송국 노조원들도 참석해 신문개혁에 대한 지지를 나타냈다.
결의대회 후 KBS신관 라디오공개홀에서 열린 '신문개혁 시민문화제'에는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 민중연대 정광훈 상임의장, 영화배우 명계남씨 등이 격려사에 나서 신문개혁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시민단체,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돼온 '신문개혁'에 대한 주장이 신문사, 방송 종사자, 정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문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경품 지급, 가격 경쟁 등 일부 언론사가 주도하는 신문시장 왜곡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
매일신문 최정암 노조위원장은 "현재 신문산업 위기의 본질은 소수 중앙지들이 독점하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의 신문시장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문개혁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지역신문 살리기'. 3월 현재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전국 종합일간지 93개사 중 서울을 제외한 시.도의 일간지는 71개. 이중 3, 4개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신문들이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문종대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기형적인 중앙 집중 현상과 중앙지의 무차별적인 지역시장 침탈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단지 신문 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
지역언론개혁연대는 중앙언론이 전체 언론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신문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스스로 나서기 시작했고 올해 처음으로 지난달 23일 '2003 신문개혁 총력투쟁'이 언론노조 조합원 6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후 24~27일 프레스센터에서 '신문개혁을 위한 연속토론회', 27일 '신문개혁 3대입법 쟁취 결의대회' 및 '신문개혁 시민문화제'가 잇따라 개최됐다.
이에 앞서 언론노조 산하 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의장 박상진 한겨레지부 위원장) 27개 지부위원장들이 18일부터 4일간 프레스센터 앞에서 철야천막농성을 벌이며 신문개혁을 촉구하기도 했다.
신문개혁을 위한 움직임은 언론노조의 총력투쟁과 함께 지역언론개혁연대가 창립되면서 본격화했다.
지난달 21일 충남대에서 창립대회를 가진 지역언론개혁연대(대표 김영호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전국언론노조, 기자협회, 바른지역언론연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언론정보학회, 지역언론학연합회, 지방분권연대 등 7개 단체로 구성됐다.
언론 현장 종사자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학계가 총망라됐다.
지금까지 언론개혁 및 지방분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오던 각 단체들이 지역언론이 고사 직전에 직면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조직을 출범시킨 것. 3개월의 준비 끝에 발족된 지역언론개혁연대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지역신문발전지원법안을 입법청원할 계획이다.
우희창 지역언론개혁연대 사무국장은 "지역신문에 대한 광고 및 자금 등 지원은 해야 하지만 편집권 독립, 근로기준법 준수 여부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며 "지역신문발전지원법은 지원 이전에 신문 스스로 개혁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주, 전남처럼 10개 이상의 군소신문들이 난립해있는 지역의 경우 이 법안을 토대로 자격 미달의 신문들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지역에도 지난 3월 참언론대구시민연대(대표 경북대 농경제학과 김상기 교수, 영남대 독문과 염무웅 교수)가 창립돼 지역언론 개혁의 물꼬를 텄다.
이 모임은 '언론개혁의 무풍지대, 대구를 바꾼다'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70여명의 회원이 언론모니터팀, 기자단 등을 구성, 언론에 대한 비판 및 이슈 생산 기능 등을 담당하고 있다.
참언론대구시민연대 허미옥 사무국장은 "지역의 언론들이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토론의 장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학 언론광고학부 최경진 교수는 "중앙지들이 지역의 목소리와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만큼 지역민들도 '우리를 위한 신문이 어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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