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생 강요하는 문화재의 덫

문화재 보존과 도시개발의 틈바구니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경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건축규제를 과감히 완화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요구에 행정당국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여기에다 일부 건축 현장은 엄청난 발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사업을 포기하고 야반도주하거나 공기지연으로 사업을 망친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경주시 노서.노동.황남.황오동 등지의 흩어진 일부 문화재 발굴지가 문화재 출토로 공사지연과 과중한 발굴비 부담에 견딜 수 없어 중도에서 포기, 발굴현장이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고 있다.

시민들은 "신라 천년의 찬란한 옛 문화를 꽃피웠던 경주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산재해 있어 흩어진 한장의 기왓장이나 한줌의 흙에도 남다르게 정성을 쏟아 왔다"면서 경주시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모순된 문화재보호법의 철폐를 촉구했다.

도시산업사회에서 도시의 기능과 역할 및 경제적 환경들이 현실적으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점으로 등장한 오늘, 조화있는 개발과 보존만이 주민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21세기를 맞은 천년고도 경주는 문화시민으로서 지난날 시행착오를 시정하고 외국의 문화관광도시에 버금가는 새로운 개발모형을 도출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주는 그동안 문화재보호를 앞세워 도시계획상 고도지구와 미관지구 등 각종 규제로 개인재산이 꽁꽁 묶이면서 시민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950만평에 달하는 문화재 보호구역과 문화자원 보존지구가 있어 건축 같은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특히 경주시 황남, 사정, 인왕동 등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30여만평이 한옥지구로 묶여 1천500여가구가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이다.

한옥은 양옥보다 배에 가까운 건축비가 들어 투자가치가 없어 이래저래 사적지에 묶인 주민들만 피해를 입고 있는 것.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대선.총선만 되면 후보들이 문화재 보호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지만 선거가 끝나면 '나몰라라' 방치해 지역은 낙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일부 주민들은 원시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도시계획상 문화자원 보존지구, 국립공원 등 개발억제지역인 녹지지역은 83.9%이고 하천.호수.고지 등 개발이 전혀 불가능한 지역이 5.7%, 개발가능지역이 10.4%로 도시발전 활성화 전망이 희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건설공사로 인해 문화재가 훼손 또는 멸실.수몰될 우려가 있을 때에는 문화재보호법 44조에 의거, 당해 건설공사 시행자가 문화재청장의 지시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이 경우 조치에 필요한 경비는 당해 건설공사 시행자가 부담토록 했다.

특히 종전 건축허가시 가시거리(문화재 경계에서의 거리) 100m를 500m로 확대, 시민들은 엎친 데 덮친격이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공사중 유물이 출토되면 신고를 기피.훼손할 때도 있어 발굴비용 부담 과중으로 오히려 문화재를 망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가가 발굴비를 지원하는 경우는 주택은 대지 150평에 건평 80평 미만, 근린시설은 대지 100평 건평 80평 미만, 농어촌시설 200평 미만으로 제한해 실질적인 수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맹식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공사중 문화재가 출토되면 반드시 신고토록 돼 있다"며 "재정이 허락하면 발굴비만큼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시 황오동 백모(56)씨 집터(대지 200평 이상에 해당) 발굴만 보더라도 유물이 출토되면서 건축주가 억대의 발굴비만 부담하고 결국 유적보존을 이유로 건축을 포기해야 했다.

이와 같은 피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공사중 중장비에 의해 유물이 출토되면 공사지연을 우려한 시공회사가 신고를 미뤄 문화재 또한 훼손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부는 발굴비 과중으로 공사 포기가 속출하고 있다.

건설 업체들은 "문화재 보호차원에서도 공사중 문화재가 출토될 경우 발굴비만큼은 국가가 부담, 조기에 발굴을 끝내 시공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이처럼 더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행정당국은 경주전역에 대한 문화재 사전조사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공원녹지나 고지수림경관지역 또는 일부 농경지 등을 개발지구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어쨌든 문화재 보존을 앞세워 사유재산을 무기한으로 양보토록 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시민들의 불이익이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옛도시보존법 제정 등 정부차원에서 보상 등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경주취재팀

박준현기자 jhpark@imaeil.com

이채수기자 cslee@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