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로부터 정서적·신체적·방임적 학대를 받는다며 상담기관에 호소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는 노인인구 증가, 평균수명 연장, 자녀 수 감소, 전통적 부양의식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당국이 노인 학대에 대처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약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배반 당한 부정(父情)
이달 초 대구·경북 노인학대 상담센터에 신고가 접수된 정모(75·봉덕동) 할머니 사연은 상담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다.
5남매가 두어달씩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지만 얼마 못 가 서로 떠넘기기 시작, 택시기사 손에 다른 형제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만 쥐어 준 채 짐짝처럼 내돌렸다.
결국 할머니는 종이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내지 못한 택시기사 손에 이끌려 파출소로 가게 됐다.
그러나 자식들이 뚜렷하게 부양 책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상담센터가 개입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관계자가 전했다.
공직생활로 모은 전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준 김모(81·비산동) 할아버지는 노후를 절망 속에 보내고 있다고 했다.
돈을 다 주고 나니 "둘째네 가시라" "형님네 가시라"고 쫓아 낸다는 것. 상담원들이 부양비 청구 소송이라도 내 월 30만~35만원씩 받게 해 주려해도 본인이 차마 그럴 수 없다고 거부해 포기됐다.
양모(78) 할머니는 부산에서 학대 받다 지난 4월 대구의 학대상담센터 '밝은 쉼터'까지 옮겨져야 했다.
아들·며느리 학대에 시달리던 할머니를 부산 상담센터가 쉼터가 있는 대구까지 보낸 것. 할머니는 2년 전 아들 주택 구입용으로 700여만원의 전재산을 보태준 뒤 학대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들 내외는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 싫어해 사실상 방 안 감금 생활을 강요했고 늘상 욕설을 퍼부었다.
할머니는 한달여간 대구 쉼터에서 미술치료 등을 받아 안정을 되찾은 뒤 부산의 한 노인시설로 옮겨졌다.
◇노인 3명 중 1명 학대 경험
노인학대 상담·예방 센터 대구경북지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6개월간 접수된 140건의 신고 중 학대로 판정된 것은 109건에 달했다.
또 1월 2건, 2월 15건, 3월 16건, 4월 26건, 5월 27건, 6월 23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가해자의 45%는 아들, 30%는 며느리, 17%는 남편 혹은 아내였다.
전국 상담센터의 지난 1~4월 사이 접수분은 427건으로 집계됐다.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가량 증가한 것.
이런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노인 3명 중 1명(37.8%)이 한 번 이상 학대를 겪었으며, 정서적 학대를 당한다는 노인들이 37.3%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었다.
노인학대 상담센터는 전국에 25개 있던 것을 지난 1월 11개로 통합해 기능을 강화했으며, 대구·서울 두 곳에 보호시설인 쉼터를 마련하고 24시간 상담전화(1588-9222)를 받고 있다.
◇미약한 보호장치
전문가들은 노인학대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국가적 대응 장치는 거의 없다시피 해 사각지대화 돼 있다고 지적했다.
노인학대에는 '가정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등으로 대응토록 하고 있으나 피해 노인 보호 장치가 거의 없고 노인학대 상담센터조차 국가 지원 없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것. 대구·경북 상담센터 권지영 상담원은 "상담센터에도 학대 노인을 그 자식으로부터 격리·보호할 법적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아 사건 개입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할 법적 장치 마련, 학대의 주원인인 가족 부양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국가 지원 등이 절실하다"고 했다.
반면 아동학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고 의무자, 벌칙, 아동보호 전문기관 설치 의무화 등을 규정한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져 있다.
권 상담원은 또 "노인들은 학대를 당하면서도 아들·며느리 고발을 꺼리고 학대 사실을 입증할 증거를 준비하는데도 취약하다"고 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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