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실 물도 끊나" 주민 반발

본격적인 찜통 더위철을 앞두고 영세민 영구임대 아파트촌인 대구 범물동 용지아파트 단지에서는 15일 수돗물 공급 중단 조치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높아졌다.

관리사무소측이 관리비를 장기간 내지 않은 가구에 이날짜로 수돗물 공급을 끊겠다고 나선 것. 입주자들은 당연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주위에서는 영구임대촌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수돗물 공급 중단 파동

용지 임대아파트 최동해 관리과장은 "관리비 체납액이 1억3천만원이나 돼 관리직원 봉급도 제대로 못줄 형편이어서 14일까지 완납하지 않을 경우 수돗물 공급을 끊을 수밖에 없다"며 "장기 체납자가 100여 가구에 이른다"고 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단지 2천400여 가구 중 월 5만원 정도 되는 관리비를 제때 못내는 가구는 500여 가구. 단수 대상은 3개월 이상 못낸 가구라고 했다.

관리비와 임대료를 장기간 체납해 도시개발공사로부터 강제 퇴거 대상자로 지목된 경우도 올들어 17가구가 발생했다.

단수 방침이 알려지자 14일부터 해당 가구들은 미리 물을 받아 놓으려 하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월 26만원의 생활 보조금으로 산다는 김모(63) 할아버지는 "최근 병원비때문에 관리비를 못냈다"며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먹는 물까지 끊는다니 죽으란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2명의 자녀와 함께 생선 노점으로 생계를 잇는다는 정모(47)씨는 "아들이 몇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딸마저 직장을 못구해 관리비 대기가 벅찼다"고 하소연했다.

범물동사무소 조응호 사회복지 담당은 "용지아파트 전체 가구 중 절반이 국가 보조금만으로는 관리비를 제때 내기 빠듯한 형편"이라며 "특히 홀몸노인, 모자·모녀 가정들이 많아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

가난한 이들을 위해 1989년부터 대대적으로 들어서서 대구에서만 입주 규모가 1만9천여 가구에 이르는 영구 임대아파트. 그 14개 마을 곳곳에서는 이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또다른 일면

반면 일부 거주자의 자활의지 부족이 경제력을 더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관계기관들에 따르면 올들어 대구 ㅇ영구임대 단지에서는 40대 주민 ㅅ씨가 숨진 지 일주일이 넘어서야 발견됐다.

그의 사인은 알코올 중독. 또다른 ㅇ아파트에서는 40대 청각장애인이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생을 마감했다.

현지 복지관 관계자는 ㅅ씨가 아내 가출 이후 술을 마시기 시작해 2년 전 현재의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는 중독 증상으로 병원·요양소를 드나드는 일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웃 70대 노인도 "매일 깡소주를 4, 5병 마시는 것 같았다"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힘이 더 빠진다"고 안타까워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단지에 입주했다는 한 50대는 "이 단지에 오면 멀쩡하던 사람도 이상해진다"고 했다.

계단에 방뇨를 예사로 하고 남이 버린 쓰레기 더미를 비워버리고 봉투를 가져가기도 한다는 것. 한 관리인은 "부랑자들 집단 수용시설 같은 절망감을 줄 때도 있다"고 했다.

이때문에 인접 민영아파트 단지에서는 영구임대와의 통로를 막는 등 심리적 거리감을 드러낸다고 구청 관계자는 말했다.

일부 영구임대 거주자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자활의지 포기라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ㅅ영구임대 주민 ㅈ씨는 "이곳에 사는 30, 40대 중에는 밤낮 없이 술을 마시는 이들이 적잖다.

놀고 먹어도 매월 40만원 가량을 국가가 보조해 주니 80만원을 준대도 땀흘려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삶에 만족하고 익숙해져 버리는 탓"이라고 했다.

◇지원 장치 정비

이 때문에 한 단지 관리소장은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는 의욕을 갖도록 유도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지역 한 동사무소 관계자는 "소외계층을 대단위로 밀집시키지 말고 소단위로 분산시키거나 일반인과 섞여 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우한 이웃들의 어려움을 보살필 지원 장치의 문제점도 잇따라 지적됐다.

한 구청 방문복지팀장은 "우리 구청에서 집중 관리대상으로 선정해 놓은 것은 250가구이지만 방문담당 공무원은 3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동사무소 관련 팀장은 "정원보다 2명이 적은 8명이 방문업무를 맡을 뿐 아니라 일반 행정업무 처리에도 빠듯하다"고 했다.

한 복지관 과장도 "복지관 요원 13명이 아파트 2, 3개 동 110~150 가구를 맡아야 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맡고 있는 가구가 많다보니 방문 때 문이 잠겨 있어도 일일이 확인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돼야 관리사무소나 119 도움을 얻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담당자들에게는 지원 책임만 지워져 있을 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한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알코올 중독 입주민을 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강제력'이 주어지지 않아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래야 타이르는 것뿐"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순일 연구원장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복지관, 동사무소 등의 복지서비스 기능을 연계하거나 총괄하는 복지사무소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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