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바다

아득한 수평선,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갈매기 울음소리…. 온갖 스트레스와 매연 속에 시들어가는 도시인들에게 '바다'는 일상탈출의 해방구이다.

더구나 여름 바다는 더할 수 없이 달콤한 낭만으로 유혹한다.

화안한 꽃밭같은 봄바다나 고독이 출렁이는 가을겨울바다도 좋지만 샐비어마냥 뜨거운 정열이 춤추는 여름바다는 엔돌핀을 솟구치게 한다.

이맘때면 시원한 파도소리에 실려오는 영원한 서머 무비가 있다.

1959년에 만들어진 미국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원제:A Summer Place)'. 피서지의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도시에서 바캉스 나온 부잣집 딸과 현지의 몰락한 집안 아들 사이의 사랑과 슬픔을 풋풋하게 그린 청춘 로맨스영화. 당시 전세계의 틴 에이저들은 금발의 미청년 트로이 도나휴와 앵두처럼 귀여운 이미지의 산드라 디에 열광했었고, 퍼시 페이스 악단이 연주한 테마곡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팝의 클래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로 시작되는 70년대 그룹 히식스의 '해변으로 가요'나 윤형주의"조개 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조개 껍질 묶어') 같은 우리의 여름노래들 또한 마법의 지팡이처럼 중장년층을 단번에 20대의 청춘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지루하던 장마도 끝나고, 휴가철이 시작됐다.

전국의 유명 해수욕장으로 피서객들을 실어나르는 피서열차며 피서지까지 짐을 배달해주는 택배서비스도 등장했다.

커뮤니티 게임사이트의 가상인간'아바타'마저도 근사한 비치패션으로 사이버 해수욕장으로 떠나고들 있다.

하지만 IMF 관리체제때보다 더 심하다는 경기불황으로 현실 속 소시민들의 주머니는 나날이 얇아져만 가고 있으니….

한 조사에 따르면 휴가철에 느끼는 한국인의 '피서 스트레스'는 21점이라 한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 강도를 보이는 '자식을 잃었을 때'가 74점, '군 입대 스트레스'가 19점인 걸 보면 21점이란 결코 낮지 않은 강도이다.

하지만 뭐든 마음 다스리기에 달린 법. 피서를 떠날 수 없는 형편이라 해도 차게 식힌 수박과 선풍기, 돗자리, 좋은 책 몇 권과 명화 비디오 몇 개만 있어도 족하지 않을까. 만약 피서를 떠난다면 덕지덕지 달라붙은 삶의 찌꺼기일랑 훌훌 털어버릴 일이다.

가계부 걱정도 잠시 접어두고 하늘과 바다, 산과 나무를 찬찬히 마음에 담아올 일이다.

전경옥(편집 부국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