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홍세영 대구예술대 교수

홍세영 대구예술대교수

대구시 북구 태전동의 치매전문요양원 실버그린 하우스(원장 박성옥).

몸이 성치 않은 65세 이상의 생활보호 대상 어른들을 위해 정부가 만든 시설이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이면 홍세영(48·대구예술대 실용음악과 교수)씨를 기다리고 있다.

작달막한 키와 벗겨진 머리를 한 홍씨는 어른들 한분 한분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한 뒤 익숙한 솜씨로 아코디언을 꺼낸다.

"오늘 비가 왔지요? 어디서 왔나요". "하늘에서요". "비가 오니 기분이 어때요?" "살랑합니다.

좋습니다". "네…첫 곡은 옛날 사시던 고향으로 가는 곡입니다.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아코디언 반주가 시작되자 한 자원봉사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분께 마이크를 건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결국 노래를 부르다가 목이 메어 잇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해 의자에 기댄 채 허공만 쳐다보는 어른도 많았지만 또 많은 어른들은 박수와 함께 "오빠"를 연호하고 시간이 끝나도 "한 곡만 더"하며 홍씨를 붙잡는다.

박성옥원장은 "잘 펴지지도 않는 굳은 손으로 손뼉을 치는 것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며 "홍교수가 올 때마다 축제분위기"라고 말했다.

홍씨는 "이곳에 오면 정말 살아있음의 감사함을 느낀다"며 "요즘 정말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참 힘든 세월을 보냈다.

학교문제와 개인적으로는 동생과 부친을 여의는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참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그만큼 불이익도 많이 당했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그 어려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평화로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홍씨가 실버그린하우스에 나오게 된 것은 지난 3월. 교회성가대 지휘자였을 때 성가대장을 했던 한의사 오정석씨의 권유로 시작했다.

이 곳의 촉탁의사였던 오씨는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제의했다.

지난해 파티마병원 중환자실에서 연주봉사활동을 하며 많은 느낌을 받았던 홍씨는 즉석에서 승낙했고, 그로부터 4개월이 흘러 이 곳에서의 연주는 홍씨에게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홍씨는 인재가 많은 대구음악계에서도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통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오블리가토(obbligato:어떤 노래에도 조를 맞춰 반주를 하는 것)의 1인자에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음에도 아무자리에서나 스스럼없이 아코디언을 들고나와 대중가요를 불러대는 괴짜이기도 하다.

홍씨의 이러한 엔터테인먼트적인 기질은 1세대 대구연예인이던 선친(홍정일)의 영향이다.

평양에서 월남, 대구에 정착했던 선친은 트럼펫과 콘트라 베이스를 다뤘고, 홍씨는 가세가 기울어진 고3때부터 콘트라 베이스와 아코디언을 메고 밤무대에 나섰다.

계명대 음대와 대학원, 미국 브루클린 음악원과 롱아일랜드 음대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지만 전자음악이나 컴퓨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1992년 귀국 후부터는 무용음악이나 방송 다큐멘터리 음악에 관여했다.

"요즘 음악치료학이라는 학문도 있지만 정말 음악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하고 웃으면 그 공간은 밝은 에너지로 가득차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에너지로 인해 활력을 얻게 됩니다"

후배, 제자와 아기베(아코디언, 기타, 베이스) 트리오를 조직해 이러한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어 한 홍씨는 자리를 뜨면서 "내 얼굴이 맑고 깨끗해 진 것 같지 않아요?"하고 물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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