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박완서, 한말숙, 김후란, 전옥주씨 등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원로문인 5명의 에세이를 모은'세월의 향기'(솔과학 펴냄)가 출간됐다.
"망각이야말로 삶 속의 죽음이며 생명의 배덕(背德)이다.
한사코 기억하기를 원한다.
날이 선 단도가 막 생살을 긋고 지나간 정결한 아픔이 차라리 소원이다.
아픔이 어떤 것인가를, 불면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실감하고 싶다…어떻게 해도 기가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가슴을 채우고 싶다"(김남조).
칠순의 노시인은 여전히 열정을 얘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통의 즙이 없이는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다고 토로한다.
스스로 삶의 용단을 외면하고 추상의 연애를 했으며 사념의 나신(裸身)을 가리웠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충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삶과 문학을 반추하는 그의 글발에서 짙은 회한이 묻어난다.
"6월의 밝은 햇살 아래 파도치는 저 나뭇잎들의 출렁이는 노래처럼 살기로 하자. 새들이 둥지를 틀고 아침마다 젖은 잎새에서 눈을 뜨고 맑은 새소리로 사람들을 깨워주는 신선한 아침이 열리는 것처럼 폭넓게 그늘 짙은 나무가 되어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푸근히 안겨오도록 삶을 풍요롭게 영위해 가자"(김후란).
소설가 박완서씨는 어릴 적 황해도 박적골과 개성을 거쳐 서울 현저동으로 이주했던 기억과 그때의 사람냄새를 곱씹는다.
그것은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요즘 도회지생활의 삭막함과는 매우 다른 경험일 터였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일 뿐 아니라 온갖 물류의 통로이기도 했다.
그 동네골목은 바퀴 달린 건 다닐 수가 없어서 남자들은 지고 여자들은 이고 다니면서 물건을 팔았다…골목은 나에게 또래들과 접속할 수 있는 암호였고, 그들과 만나서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는 광장이었고, 외부에서 신기한 것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통로였고, 문득문득 탈출을 끔꾸게 하는 미로이기도 했다".
희곡작가 전옥주씨의 글은 속도와 우격다짐으로 점철된 요즘 세태에 대한 비판이 읽힌다.
요컨대 성실하지 않고 진정성이 없는, '대가를 치를 생각을 않는' 현대인들에 대한 조근조근한 잔소리와도 같다.
소설가 한말숙씨는 해방과 전쟁 등 현대사의 격랑을 뚫고온 삶을 회고하면서 길어올린 통찰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것은 욕심의 자제, 여유와 같은 쉽고도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인생사 매사는 대소를 막론하고 다같이 소중해서 어느 일에건 성의를 다해서 대해야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두 손바닥으로 물을 풀 때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는 물은 그냥 흘러 버리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것은 더러 잃으며 사는 것도 유연한인생의 멋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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