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에 허송할 세월 없다

어제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 내용은 솔직히 정치공세 이상의 것을 느끼지 못하겠다.

국민을 직접 상대로 하여 정치개혁이란 '여론몰이'를 통해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그 뜻은 이해할 만하나, 이미 정대철 대표 뇌물수수 혐의가 초점이 돼있는 판국에 "내돈만 문제있나, 같이 털자"는 식의 대(對)국민 호소이면 제안의 순수성에서부터 좋은 점수 받기는 틀려버렸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거부'까지 십분 예상한 수순이라면.

다 알다시피 대선자금을 물고늘어진 것은 야당이 아니다.

정 대표가 뇌물수수에 휘말려 우선 급한 김에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자금의 불법성 문제를 물고늘어진 거다.

그렇다면 일의 순서는 검찰수사에서 불거진 여권인사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리요, 야당에도 비리가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파동의 본질은 굿모닝시티 사기분양과 정 대표 뇌물수수 사건이다.

대통령이 이를 빌미로 엉뚱한 뇌관을 건드리니까 자꾸 '물타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더구나 특별하지도 않는 기자회견에서 몇가지 논리 비약적인 발언까지 했다

대선자금 공개를 제의하면서 노 대통령은 '재계의 자발적 공개'를 거론했다.

당연히 재계는 "돈을 받았으면 받은 쪽이 밝혀야지 우리가 왜?"하고 튀었다.

경제살리기를 독려해야 할 대통령의 할 소리가 아닌 것이다.

대선후보 당시 경선자금 공개요구와 관련해선 "합법의 틀 속에서 할 수가 없었다"면서도 관련장부 이미 다 파기했다고 했다.

국민이 어디까지 믿으라는 얘기인가. 더구나 그는 이날 느닷없이 "나는 영수가 아니다"며 영수회담의 개념까지 바꿔버렸다.

자기는 행정부 수반이므로 영수회담을 하려면 여.야 당 대표끼리 하라는 얘기다.

그럼 대선자금 공개 얘기는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꺼내야지 왜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안하는 것인가?

면책조건부 대선자금 공개문제도 그렇다.

대선자금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같이 깨자"고 하는게 말은 맞는지 모르나 면죄부는 대통령이나 누가 제안한다고 그 법적 면죄가 성립되는게 아니요, 더구나 국민으로부터의 '도덕적 면죄부'는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국회는 그것 아니라도 할 일이 태산같다.

민생 법안이 산더미다.

당장 정 대표의 체포동의안 처리, 선관위가 내놓은 정치개혁법안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대선자금 공개문제로 낮밤을 지새라는게 노 대통령의 제안이라면 참으로 답답하다.

공개하고 싶거든 야당에 묻지 말고 자기네 혼자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