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추위에 파랗게 질려서 하교하는 짧은 반바지 차림의 일본 초등학교 학생들을 도쿄(東京)의 길거리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의 학부모들이라면 저렇게 추운 겨울 반바지 차림으로 학교에 보낼 턱도 없겠지만 국가의 교육정책에 대해 엄청난 항의를 하리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강하게 키운다는 국가의 교육방침(일본의 군국주의적 잔재)에 대해 일본인들은 어느 누구도 항변을 하지 않는다.
21세기에 일본의 대학이 세계적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면 내일의 일본은 존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져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 문부과학성은 연구거점대학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는 COE(Center Of Excellence)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의 연구경쟁력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대학의 연구수준으로부터 결정된다는 그들의 신념은 한결같다.
내가 일본에 체류하면서 자주 들리는 시로카네타에 있는 라면집 주인도 신이 나서 "나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대학의 연구비 지원을 위해 돈을 내라면 당연히 낼 것"이라는 신념에 차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놀라운 일은 2003년 COE계획의 연구비가 우리나라 대학 총 연구비(R&D)의 무려 100배가 넘는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세계의 유수 대학인 도쿄대학이 교토대학보다 2003년 연구비 지원총액이 적게 지원되었다.
일본 유력 일간지 마이니치신문에서는 이를 두고 규모 면에서나 연구실적 면에서나 도쿄대학이 교토대학보다 경쟁력이 약 30%정도는 앞서지만 도쿄대학의 2003년 연구비 총액을 교토대학보다 적게 배정한 이유는 도쿄대학이 더욱 더 세계적 경쟁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려는 쇼크 치료법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합리적 발상이지만 모두가 이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만일 우리나라였더라면 어떠했을까? 또한 지난 10일 일본 국립대학의 법인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통과되어 오는 2004년부터 도쿄대를 포함한 모든 국립대학의 법인화가 전면 실시된다.
국립대학의 재정자립을 일차적 목표로 하는 국립대 법인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법인화가 실시되는 내년부터는 국립대학의 등록금이 무려 25%라는 파격적 인상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일이 우리나라 경우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아마 전국 국립대학 총장실은 수난을 면치 못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일본 국민들은 국가의 정책에 대해서 이처럼 고분고분 따를까? 바로 그 이유는 국가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부터 일본 언론과 정부는 북한의 일본인 납북과 관련 납북자 가족문제를 국제적 문제로 삼아 전략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듯하다.
납치 문제를 테러로 규정하고 일본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던 다음날, 놀랍게도 유사법안(군사무력 재무장)이라는 엄청난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은 단 몇명이더라도 일본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는 믿음을 심는데는 성공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개혁적 의지를 국민이 승복하도록 하기 전에 먼저 국가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얻도록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 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의 위기 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왜일까? 세계 베스트 50위 권에도 들어가는 대학이 하나도 없는 이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는 달콤한 꿈을 감히 꿀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민들 역시 일본의 라면집 아저씨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면 모든 국민이 아무런 조건 없이 찬사와 지원을 보내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줄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상규(경북대 교수 국문학)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