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모자를 쓰는 나이

(아무 말 없이)

지팡이를 거느리는 나이(아무 말 없이)

아무 말 없어도

이미 세상을 읽는 나이

모질게 사랑했던(남들 눈에 안 띄게)

세상의 끝을 (아무 말없이

붙잡고 있는 저 帽子!)

김영태'황혼'

디어도어 드라이저 원작을 각색한 '황혼'이란 흑백 영화가 있었다.

황혼기 주인공이 젊은 연인(제니퍼 존스) 을 위해 그녀 몰래 지갑 속 지폐 몇 장 꺼내 영원히 떠나는 라스트 신이었다.

반백의 머리 모자에 감추고 지팡이 짚고 모질게 사랑하던 마음 숨기며 남은 세상 끝자락 잡고 나가는 저녁이었다.

말 없는 눈빛에도 세상을 읽게 된 이순 지난 김영태 시인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익명의 어떤 모습 같기도 한 삶의 순간을 그는 능숙한 캐리커처로 그리고 있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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