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레저&여가-유럽 테마여행

7월 중순의 로마는 태양의 강력한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로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 아니 전 유럽이 예년보다 무더운 30℃이상의 고온으로 연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2003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성화 불씨를 구하러 이탈리아 북부의 토리노로 가는 여정에 들렀던 로마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로렐라이 언덕에는 서구 문명의 영광스런 잔영과 전설 속에 깃든 아름다운 슬픔이 여행객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서구 문명의 고향, 로마

꼭 가보지는 않더라도 서구 문명의 요람으로 널리 알려진 로마에는 고색 창연한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가득차 웬만한 곳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잘 정비된 법·제도와 관용의 정신으로 역사의 승자가 되었음을 찬양한 로마제국은 그 웅대한 후광을 오늘날에도 로마 곳곳에 남기고 있다.

고대 로마의 원형 투기장이었던 콜로세움은 성 베네치아 광장을 옆으로 끼고 20분 이상 걷다 보면 나타난다.

서기72년 베시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8년만인 80년에 완공한 콜로세움은 직경의 긴 쪽이 188m, 짧은 쪽이 156m, 둘레 527m의 타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외벽은 높이 48m로 4층, 맹수와 검투사들의 시합이 열리던 오락시설이었으며 404년까지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었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2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관광객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선다.

로마의 건국 신화가 깃든 캄피돌리오 광장(언덕)도 눈을 끈다.

늑대의 아들이라고 하는 로물루스가 영어로 수도(capital)라는 뜻을 지닌 이 언덕에 도시 로마를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공공건축물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계단(코르도나타)을 올라가 펼쳐진 광장에 ㄷ자형의 건축물이 캄피톨리오 광장을 채우고 있다.

정면에 시청으로 이용되는 세나토리오궁이 있고 좌우로 누오보궁과 콘세르바토리궁이 있다.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누오보궁 안에는 성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와 풍속화가 벽면을 채우고 있고 광장 중앙에는 '철인황제'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도미티아누스황제의 경기장 옛터에 세워진 나보나광장도 로마의 유명한 광장들 중 하나이다.

일찍이 아피아가도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도로 건설로 제국의 중추신경계를 완성시키는 현명함을 보였던 로마인들은 도시 내부에도 잘 닦여진 도로와 광장, 건축물로 영구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나보나광장은 길이 246m, 폭 65m로 고대 로마의 마차 경주장이었던 곳답게 길게 뻗은 광장 주위에 16세기에 건립된 장려한 파르네세궁 등 건축물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3개의 분수가 들어서 있다.

그 건축물 중 하나는 처녀이며 알몸으로 순교를 당하는 순간에 머리카락이 갑자기 길어져 몸을 감쌌다는 성녀 아녜제를 기리는 성 아녜제 성당으로 17세기 바로크시대의 대표적 건축가 보르미니가 세웠다.

3개의 분수 중 가운데에 있는 4대강 분수는 격동적인 표현과 안정감을 동시에 이룬 베르니니의 걸작 조각물로 특히 유명하다.

나보나광장 주위에는 이 도시뿐만 아니라 유럽의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노천카페의 풍경이 한가롭다.

노천카페는 카페 내부의 음식값보다 카페 바깥 자리의 음식값이 더 비싸다.

시 소유지에 자리를 마련해놓았기 때문에 음식값에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도심에 위치한 나보나광장은 땅값이 특히 비싸 이 곳의 만만찮은 노천카페 음식값은 웬만한 관광객들을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길바닥에 앉아 음식을 먹든 노천카페에서 음식을 먹든 뭐가 대수겠는가. 그들은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움은 처지의 격차를 뒤엎어버린다.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과 미술관, 박물관, 스페인 광장, 판테온, 트레비 분수,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베,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의 진실의 입, 카라칼라 목욕장,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도 로마에서 볼 수 있는 유적들이다.

▨게르만의 숨결, 하이델베르크와 로렐라이

유럽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하이델베르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이델베르크에는 1386년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성, 철학자의 길, 학생감옥 등을 볼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은 구 시가지 곳곳에 단과대학 건물들이 흩어져 있으며 16세기 후반과 17세기 후반 문화와 종교혁명의 중심지로 종교혁명가 루터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하이델베르크성은 13세기경 처음 세워진 것으로 라인 선제후의 성으로 사용되면서 확장돼왔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뒤섞여 있으며 성 지하에는 1751년 만들어진 약 22만ℓ 들이의 세계 최대 술통이 보존돼 있다.

적의 침입으로 장기간 성이 포위됐을 때에도 술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하이델베르크성 앞을 흐르고 있는 네카강 건너편 언덕에는 칸트가 매일 정확하게 산책해 주민들이 시계를 맞췄다는 철학자의 길이 있다.

이 길은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헤겔, 야스퍼스 등도 사색에 잠기며 걸었다.

아름다운 고성들이 끝없이 이어져 독일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라인강변 도로를 달리다 만나게 되는 로렐라이는 라인강이 S자로 굽이치는 곳에 면한 절벽의 아름다운 계곡이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미쳐서 알몸으로 절벽 언덕에 나가 남편을 기다리다 뱃사람들을 홀려 침몰사고로 목숨을 잃게 하는 일이 끊이지 않자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자원한 로렐라이라는 처녀를 강에 던졌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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