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 -북한 핵, 미군 신속배치부대, 일본 자위대 파병….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에는 언제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런 현실을 학생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마침 대구와 광주 흥사단이 청소년 DMZ 기행을 한다길래 동행했다.
지난달 23일 오전9시. 38명의 대구 중학생들은 강원도 철원에 있는 금산청소년수련원을 향했다.
버스 이동 내내 학생들은 흥겨운 수학여행이라도 떠나는 양 깔깔거렸다.
저녁7시. 광주 중학생 38명과 만남의 시간. 어른들은 이번 기행에 평화와 통일이라는 의미 외에 지역감정 해소라는 뜻을 담았겠지만, 학생들에게는 '개그콘서트 생활사투리'의 재미만 있을 뿐이었다.
(1)수련원에서의 첫날 밤. 조 편성을 한 뒤 저녁식사를 마친 학생들이 강당에 모였다.
조별로 이름과 구호를 짓고 깃발을 만드는 시간. 한 조를 맡은 광주 청소년 지도자 김현진씨가 혀를 내두른다.
"팀 이름이 대한민국 대표마녀, 뱃살공주라고, 시방 머하는 것이여". 박재영(대구동평중1년)군이 소리친다.
"우리 팀명은 세계 대표마녀, 배설공주! 고마 이걸로 정하입시더". 조별 발표 시간엔 온 강당에 웃음이 넘쳤다.
(2)24일 아침 학생들은 DMZ 기행에 나섰다.
첫 목적지는 고석정.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2층 누각으로 6·25때 소실됐던 것을 1971년에 재건한 것이다.
고석정을 오르는 학생들의 발길은 가벼웠다.
전장의 한 곳이었다는 생각, 비무장지대가 그리 멀지 않다는 느낌보다는 소풍을 나온 듯했다.
부근 잔디밭에서 통일교육이 진행됐다.
정상회담 실천연대에서 온 강사가 북한의 현재 모습과 달라진 남북 상황 등에 대해 설명했다.
학생들의 눈빛에는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들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3)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는 해방 후 북한군이 지었다가 6·25때까지 사용한 건물로 전쟁의 참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쟁 유물로 꼽히는 곳이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을 들락거리던 학생들은 이야기로 듣는 과거에는 둔감한 것일까. 모두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발해를 꿈꾸며'에서 봤다며 아는 척을 해댔다.
성진경(대구오성중3년)군은 "뮤직비디오에서 볼 때는 멋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너무 초라하다"며 "폐허가 된 건물이 마치 남북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4)월정리역과 맞붙은 통일전망대를 찾은 학생들. 일대 지형을 축소한 모형을 들여다보고서야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깨닫고 있었다.
마침 근무 시간이 된 군인들이 얼굴을 검게 칠하고 철조망 안 비무장지대를 향했다.
이곳이 분단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느낀 얼굴들. 그래도 군대는 아니라는 듯 김재영(대구이곡중1년)군은 "통일 되면 군대 안 가도 돼죠? 군대 밥 한 번 먹어보니 2년 동안 어떻게 먹을까 아찔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5)월정리역의 객차 잔해 앞에 선 학생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입간판을 쳐다보던 권영민(대구도원중1년)군은 "북한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통일이 돼야 이곳의 철마가 다시 달리게 된다니 안타깝다"고 했다.
신기한 듯 객차를 구경하던 학생들은 사진을 찍자고 하자 장난스레 주루룩 기대며 줄을 섰다.
끊어진 철로는 말없이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지만 이미 흘러버린 50여년의 세월은 학생들에게 옛 이야기쯤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6)월정리역에서 한시간 넘게 걸어 도착한 백마고지. 조별 경쟁을 하느라 힘든 줄도, 주위가 어떤지도 모르고 걸어온 학생들의 얼굴에는 정상에 오른 등산객의 뿌듯함이 넘쳤다.
민덕기(대구영신중2년)군은 "1등으로 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2등에 그친 게 아쉽다"며 "조원들과 한 마음으로 올라오고 보니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전쟁 당시 24번이나 주인이 바뀌며 우리 군과 중국군 1만7천여명의 목숨이 스러진 곳이라는 설명에 숙연한 표정을 짓던 학생들은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하자 금세 왁자지껄 장난기로 돌아왔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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