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없이 진열된 옷 가운데 내 마음에 꼭 드는 옷,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반대로 판매점 입장에선 언제나 망설이는 고객의 눈길을 단번에 끌지 못하면 판매로 연결시키기가 어렵다.
이런 양쪽의 상반된 입장을 연결시켜 주는 브랜드의 야전사령관, 매장 디스플레이에서부터 고객의 취향이나 체격에 어울리는 제품을 골라주는 일까지 해내는 전문 판매원들, 바로 숍 매니저(shop manager)다.
"단순히 제품만 판다면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할 거예요. 소매 끝 단추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꼼꼼함과 고객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정성 없이는 결코 고객을 감동시킬 수 없죠".
롯데백화점 대구점 한 여성 의류 매장의 숍 매니저 임선영(33)씨. 그녀는 고객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접하는 숍 매니저가 이젠 상품 기획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고객을 만나는 최전방에서 기업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업의 이미지를 대신하고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됐다는 것. 그러다 보니 능력이 검증된 숍 매니저의 경우 연봉이 1억원을 넘기도 하고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
그러나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고소득 때문에 숍 매니저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오랜 경력과 고객을 사로잡는 노하우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죠".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매장이 문을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제대로 한 번 앉을 수 없는 데다 이따금 상식 밖의 요구를 하는 고객들을 만날 때면 스트레스도 쌓인다고 했다.
그래도 항상 친절을 잃지 않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것이 숍 매니저가 갖춰야 할 미덕이라는 것.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했던 그녀가 숍 매니저를 지망하게 된 것은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조교를 하던 지난 97년 외국의 한 유명 숍 매니저를 만나면서부터. "패션 선진국일수록 숍 매니저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죠. 유명 패션학과나 연구소를 나와야 할 만큼 되기도 힘들뿐더러 사회적 인식도 높습니다".
하지만 국내 사정은 달랐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옷이나 파냐"는 주위의 곱잖은 시선은 참기 힘들 정도였다는 것. 그러나 IMF 사태를 거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티셔츠 하나를 사는데도 고객들은 주저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가 갑자기 줄어들자 업계에서도 전문 판매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거죠.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 책임감과 리더십, 프로의식이 있는 젊은이라면 도전해 볼만한 직업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숍 매니저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직종으로 만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고졸이나 전문대 졸업생이 대부분이었으나 요즘에는 4년제 대학 졸업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그렇다고 학력이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는 아니다.
거쳐야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어지간해서는 견디기 힘든 것들이다.
국내에선 숍 매니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대학이나 사설학원 등 전문 교육기관이 드물다.
백화점 아르바이트나 의류업체 판매사원부터 시작해 매장 청소, 물건 옮기기 등 밑바닥부터 경력을 쌓는 것이 현재로선 교육의 전부다.
의상학과 등 패션관련 학과를 나오는 것이 유리하지만 실무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졸자의 경우 보통 3, 4년, 고졸자는 6, 7년 경력을 쌓아야 한다.
스스로를 이겨내는 인내와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외모를 단정하게 가꾸고, 어느 정도의 외국어 실력도 갖춰야 한다.
숍 매니저를 지망하는 10명 가운데 6명이 중도에 포기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숍 매니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직이 잦은 편이다.
우리나라 의류 브랜드의 단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직하는 경우가 많지만 연령대에 맞는 브랜드를 찾아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골고객 확보를 위해 한 지역에 뿌리를 둔다.
업계에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숍 매니저의 수를 대략 2천~3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인정받는 매니저로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출을 올리지 못해 퇴출당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능력제로 보수를 받다 보니 연봉 1억원 이상의 숍 매니저가 대구에도 10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그만큼 실적과 매출로 평가받는 냉혹한 직종"이라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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