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代이은 독립운동가 김염의 삶

▲상하이 올드 데이즈(박규원 지음/민음사 펴냄)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 영화의 황제'가 됐던 김염(1910~1983)을 아십니까?

암울했던 시대는 늘 영웅을 탄생시킨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침략적인 외세에 지배를 받았던 국가는 더욱 그러하다.

유명한 독립운동가는 물론 시골에서, 만주의 이름없는 산골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던 지사(志士)들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하나 찬연히 빛나는 영웅이 아닌 사람이 없다.

'상하이 올드 데이즈'(박규원 지음, 민음사 펴냄)는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김염(본명 김덕린)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민음사가 제정한 '제1회 올해의 논픽션상' 대상 수상작품이기도 한 이 책은 격변의 세기를 산 천재 예술가 김염의 일생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밟힌 한 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지은이와 김염은 끈끈하게 연결돼있다.

지은이는 김염의 부친이며 한국의 제1호 면허의사인 김필순을 추적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항일투사들의 정신적 지주였지만 상대적으로 잊혀진 독립운동가였다.

그 과정에서 그의 3남인 김염을 알게돼 8년동안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그의 자료를 수집했다.

또 김염은 지은이의 작은 외할아버지이기도 했다.

김염은 아버지의 항일정신을 이어 받은데다 예술가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1919년 일본밀정에 의해 아버지가 독살당하자 궁핍한 시기를 보내고 17세였던 1927년 상하이로 건너갔던 그는 늘 가난에 찌달렸지만 29년 중국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었던 쑨유의 과감한 기용으로 배우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32년 '야초한화(野草閑花)'의 주연을 맡아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이 바로 중국 최고의 여배우이자 장만옥이 주연해 잘 알려진 완령옥(롼링위)이었다.

준수한 외모에다 그림과 음악, 스포츠 등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김염은 출연한 영화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중국영화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가 단순한 영화배우였다면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늘 조국을 생각해 조선인교포협회를 조직했고, 조선인 학교와 무용가 최승희 등 예술가를 후원했다.

만주사변이 터지자 자신의 브로마이드 사진을 팔아 항일자금을 지원했으며 '들장미' '장지릉운' 등 항일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장지릉운'은 항일영화로 일본이 홍콩을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필름을 찾아 없앤 영화로 기록돼 있다.

국공내전때도 중국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끝까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면서도 모택동으로부터 국가 일급배우로 임명됐으며 당 고위간부직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촬영도중 얻은 병으로 62년 영화계를 은퇴했고, 문화혁명때는 숙청돼 강제노동수용소에 감금됐으며 83년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꺼질줄 모르는 불꽃'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한 시대를 살다간 김염의 삶을 조명한 이 책에는 훌륭했지만 잊혀진 배우라고 지나쳐 버리기엔 아쉬움이 많은 한 인간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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